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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May 04. 2019

안전한 나라, 한국?


얼마 전 독일인 친구와 그녀의 아들이 와서 집에 머물다가 갔다.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아니 두 번째 방문이라서 더 신경이 쓰였다. 지난번에 갔던 데를 빼고 어디를 가야 할까? 지난번에 했던 것을 빼고 무엇을 해야 하나? 당연하게 여겼던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갑자기 점검해보게 되었다. 미세먼지가 많아졌는데 답답해하진 않을까. 그런데 그런 나의 걱정은 함께 공항에서 오는 길에 쓰윽 사라지고 말았다.

친구는 한국에 오기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3주나 여행을 하고 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호텔에서 고작 백 미터 떨어진 편의점에 걸어서 가려고 했는데 호텔 직원이 말리는 거야. 위험하니까 차를 타라고.”

그 위험요소에는 노상강도도 있지만 거리를 돌아다니는 하마 같은 야생동물도 포함된다.

“물이 귀한 나라라서 모든 화장실에 <save water>라는 표시가 있고 한 번 사용하고 변기 물을 내려선 안 돼. 여러 번 사용 후에야 한 번씩 내리라고 하더라.”

그녀가 SNS에 올렸던 멋진 남아프리카의 풍경 사진 뒤엔 그런 불편요소가 놓여 있었다. 그런 위험과 불편을 3주나 견디어냈다면 서울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건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리라. 실제로 그녀는 나와 함께 광화문을 거닐 때 가방을 그냥 한쪽 어깨에 쓱 메도 되니 너무 좋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요즘 떠도는 유머를 들려주었다. 한국의 카페에서 누군가 스마트폰을 놓고 자리를 비우면 외국인과 한국인의 반응이 다르다고. 외국인은 ‘저 스마트폰 탐난다!’ 하지만 한국인은 ‘저 자리 탐난다!’ 한다고.      



유튜브에도 이러한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길을 가다가 지갑을 떨어뜨리면 뒤에 오던 한국인들이 주워서 그 지갑을 돌려준다. 혹시나 놓칠세라 다다다 뛰어가기까지 해서 건네는 것이다. 그 동영상을 보면 마치 무슨 역할극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이런 면에서 안전한 나라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친절을 베푸는 척하면서 관광객의 가방을 빼돌리고, 지갑을 슬쩍하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선 훔치거나 슬쩍하지 않는 것인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내 지갑을 소매치기 했던 예전의 그 ‘빠른 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CCTV가 많아져서 범죄 예방 효과가 커진 덕도 있을 것이다. 현금 대신 카드를 쓰는 분위기 때문에 남의 지갑에 굳이 탐을 낼 이유가 없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만 유독 선량하다고, 그리고 도덕적이라고 자긍심을 느끼며 방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빠른 손, 나쁜 손들은 아직도 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악행을 떨칠 뿐이다. 그들에겐 테이블 위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떨어진 지갑은 푼돈이다. 그들은 보다 큰돈을 버는 것을 원한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놓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일원일 수도 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는 여전히 존재한다. 악이 다른 방향으로 변화, 그리고 진화했을 뿐이다.   


  

며칠 전엔 한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가 귀가하지 않았으니 혹시 보았으면 연락 달라는 공지가 단톡방에 떴다. 사진 속 아이는 전혀 모르는 아이였으나 계속 신경이 쓰였다. 조두순 같은 인간이 동네에 없으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다행히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올라와서 한시름 놓긴 했으나, 아이들을 둘러싼 범죄가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에 안타까웠고 답답했다. 예전엔 어린이가 사라지면 ‘단순 유괴’를 떠올렸는데, 이젠 그와 종류가 다른 여러 범죄들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고도 우리나라가 과연 안전한 나라일까.     



그리고 얼마 후, 친구와 그녀의 아들은 3박 4일간 외국인을 위한 국내 패키지여행을 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제 막 시청 앞에서 택시를 탔다는 그녀의 연락을 받고 나는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노심초사했다. 나는 택시에 대해서도 100% 믿지는 못한다. 일부러 먼 길을 돌아서 오는 것은 아닌지, 요금을 속이는 것은 아닌지, 일부러 시비를 걸지는 않을지. 불과 몇 년 전 카카오택시를 타고도 나는 속지 않았던가. 다행히 친구가 알려준 택시 요금은 적당했고 그녀의 표정도 환했다. 서울 그리고 한국은 그녀의 가이드북에 적혀 있는 대로 밤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도시이고 안전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안고 친구는 돌아갔다.     



하지만 그 안전이란 상대적인 것, 그리고 언제나 가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길에서 하마를 만날 위험은 없다 해도, 아이가 안 보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곳이 우리 사회가 되었다. 차라리 스마트폰이나 지갑은 집어가도 사람 생명은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회가 순박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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