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강 Jul 15. 2019

결국 살아 있는 동안의 일

TV에서 셀럽들의 집이 공개될 때가 종종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수집해서 진열해놓고 있다. 프라모델, 인형, 구두, 운동화......그냥 보면 예쁘고 멋지지만, 이내 내겐 걱정이 올라온다. 건드리면 툭 쓰러질 것 같고 놔두면 먼지가 쌓일 것 같다. 눈살을 찌푸리며 쯔쯔, 한다. 사실 부러워서 그러는 걸까.      


우리 집엔 딱히 귀중품이랄 게 없다. 만약 도둑이 든다고 해도 도둑 입장에선 무엇을 들고 나가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책벌레 도둑이라면 신간 몇 권 들고 나가려나. 서랍 속의 현금 10만원? 신권이라 신기해서 모셔두었으니 그것 정도는 탐낼 만하다. 그 외에는 모두 오래되었거나 낡았거나 당장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다지 가치가 없는 물건들뿐이다. 진열장 위에 올려놓는다면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 내 의도가 있다.     


어차피 죽으면, 다 버릴 것들.   

 

깊은 속내는 이것이다. 죽은 후 다 버릴 텐데 너무 비싸고 귀중한 것을 보관하고 싶지 않다. 간혹 멋진 물건이라고 해도 죽은 사람의 것이라는 이유로 받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것 같다. 상대방이 기쁜 마음으로 선물한 게 아니고, 죽은 후 마지못해 건네진 것이 왜 반갑겠는가. 오래 남길 생각보다는 지금 살아 있는 내게 필요한 것인가가 내겐 중요하다.


수 년 전, 나는 큰이모의 지인이던 중국인의 초청으로 이모를 따라 베이징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은 이런 부탁을 해왔다. 미국에서 앤틱샵을 운영하는 분이 온다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골동품들을 들고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물건들의 진위를 감정해달라고. 지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 이모는 그 난처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호텔 안에 미리 빌려둔 방에서 비밀스럽게 감정 쇼가 시작되었다. 어딘지 험상궂은 인상의 중국 남자들이 하나둘 조심스럽게 보자기에서, 겹겹의 상자에서 물건들은 꺼내들었다. 요란스런 포장이나 보관함이 무색할 만큼, 일개 문외한인 내가 봐도 조잡해보였다. 아닌데, 이건 정말 아닌데.

걱정스럽게 이모를 돌아보니 이모는 의외로 미소를 지으며 ‘좋네요!’ ‘좋네요!’ 하고 있었다. 설마 이모 눈에 이것들이 다 진품으로 보인다는 것인가? 내 눈이 잘못된 것인가?

하지만 이모는 마지막에는 늘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잘 모르겠네요.”    


결국 그 자리에 온 모든 물건들은 ‘좋아 보이지만,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 것들로 판명이 났고 우리는 무사히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중에 이모는 쿨하게 말했다. ‘다 가짜였다!’고. 그런데 앞에서 대놓고 ‘가짜!’라고 말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흥분한 주인의 난동을 겪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가짜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왔고 또 가슴에 품고 조용조용 걸어나간 사람들. 어떻게 봐야 할까.

     

결국 모든 건 살아 있는 동안의 일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해도, 아무리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들도 언젠가는 쓰레기장으로 갈 것이고 내가 존재했었다는 것도 잊힐 것이다. 그것은 불길한 전망이 아니라 너무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바로 오늘이 내겐 전부다. 살아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살아 있을 때 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왜 나는 진정한 친구 하나 없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