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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Jul 02. 2020

돈에 대한 집착

돈이 최고인 삶을 꿈꾸나요?


식물원에 같이 가기로 한 아빠가 약속을 어겼다.

“약속을 그렇게 어기는 게 어디 있어요?”

울먹이는 딸에게 아빠는 돈을 건넨다. 딸은 눈물을 거두고 돌아서다가 의자에 부딪힌다. 순간 조심하지 못했다고 엄마에게 혼날까 봐 그녀는 돈으로 무마할 궁리를 한다. 학교에 지각하면 선생님께 역시 돈을 드려야 하니까 서둘러 버스를 탄다. 한 노인이 자리 양보를 부탁하며 돈을 내민다. 수업 시간엔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배운다. 아니나 다를까 60점짜리 시험지는 돈을 내서 90점으로 만들 수 있다. 그 시험지를 아빠에게 보이니 아빠는 칭찬과 함께 딸에게 돈을 선물로 준다. 60점을 90점으로 만들 때 선생님께 드렸던 돈은 그렇게 회수된다. 잠이 들기 전까지 돈 계산만 하던 딸은 문득 예전의 어린이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지 궁금해한다. 호시 신이치의 소설 <돈의 시대>는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미래 사회의 살벌한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가상 미래의 이야기에서 황당함보다는 ‘그래, 우리 사회도 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에 나는 더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터인지 결혼이든, 생일이든 축하 선물은 물건 대신 돈이 오고 간다. 현금을 은행에서 찾아오는 것조차 귀찮아 상대의 은행 계좌에 바로 보내기도 한다. 내가 처음 ‘만약 축의금을 계좌로 보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땐, ‘아, 편하겠지만 또 너무 이상하겠네.’ 생각했다. 비즈니스도 아닌데 실물이 아닌 ‘숫자’만 보낸다니. 이건 개그 프로에서나 한번 사용하고 웃어넘길 에피소드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그 방법이 상용되는 것을 보고 나는 우리가 오랫동안 걸치고 있었던 어떤 옷을 한 겹 벗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가볍고 홀가분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뻔뻔해지는 쪽으로 한발 더 나아간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받는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결국 돈이라는 것. 또 보내는 사람 역시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괜히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축의금의 계좌 송금’에서 드러난다. 그렇게 돈만 주고, 돈만 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슬쩍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영화 <베테랑>에서처럼 실제로 사람을 맘껏 때리고 맷값이라며 돈을 던지는 악덕 재벌 3세가 등장하기도 하고, 사악한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끝없이 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괴롭히기도 한다. 돈은 어느새 사회 안에서 최상의 가치가 되어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간다면 우리 삶은 저 위의 소설처럼 단순, 삭막, 살벌함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나 역시 평생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고, 적지 않은 순간 돈 때문에 걱정했고, 여전히 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이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오직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다.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버는 일엔 대개 어떤 살기(殺氣)가 동반된다. 가혹한 희생과 인간다움을 넘어서는 광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번 돈을 지키는 데에도 역시나 비슷한 에너지가 사용된다. 인간적인 면을 유지하면서, 유유자적하게 부자가 된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흔히 건물주가 가장 쉽게 돈을 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각자 다른 사정이 있는 임차인으로부터 매달 임대료를 받아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웃는 얼굴로 친절해서는 불가능하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나 연예인의 세계에서도 거액이 오가는 만큼 연민이나 동정은 완전히 배제된 자기관리가 요구된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고의 부자 J. 폴 게티의 실화를 다룬 영화 <올 더 머니All the money in the world>는 부자의 사고방식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아끼던 손자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었지만, 그는 합의금을 내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범인들은 부자에게도 가족이 가장 소중할 거라고 믿고 일을 벌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자에게 일 순위는 돈이었다. 돈이 최상의 가치인 사람에게는 재산의 1%나 100%나 똑같다. 모든 것의 초점이 돈에 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J. 폴 게티의 말처럼, 한순간 부자가 될 수는 있어도, 부자로 오래오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돈에만 집착하는 삶은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당신이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더욱 돈이 아닌 다른 것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낭비하며 돈을 펑펑 쓸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돈이 전부인 양 집착해서 다른 것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생을 살면서 더 늦기 전에 경험해야 할 것들, 여행, 연애, 취미 등이 분명히 있는데 돈 때문에 계속 미룬다면 10년 뒤 허겁지겁 돌아봤을 때 그것들의 색은 이미 초라하게 바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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