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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Jul 09. 2020

공격성

잠깐 멈추고 방향을 틀어요

 

작년 말, 걸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손나은 양에게 지속해서 악플을 달아온 사람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는 80년대 학번의 S대 법학과 출신인 남자였다. 그 나이의 남자가 왜? 그 정도 학벌의 사람이 왜? 처음엔 너무 이상했다. 그런 사람에게 여자 아이돌 스타란 그냥 무관심의 대상이거나, 어쩌다 방송에서 보면 ‘예쁘다’ 하는 정도의 반응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집요하게 상대를 괴롭힐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는 사법시험에 계속 실패함으로써 정신질환이 생긴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하필이면 손나은 양이 걸려들었지만, 꼭 그녀가 아니었어도, 누구라도 그는 표적 삼아 자기 인생의 실패에서 기인한 공격성을 퍼부었을 것 같다. 문제는 저런 정신질환자만이 악플을 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플은 현대인이 닉네임 뒤에 숨은 채 자신 안의 공격성을 표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때론 지성과 논리, 정의, 분별이라는, 그럴듯한 옷을 입은 채. 따라서 악플을 탓하기 전에 해소되지 못한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우리는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악플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뒷담화다. 악플의 오프라인 버전이랄까. 처음엔 가볍게 시작한다. 

“K 요즘 어떤 것 같아?”

“새로 이사 가서 잘 지내던데.”

“그래? 그런데 좀 이상한 소문이 있어서 말이야.”

이상하다던 소문은 곧 상대의 부도덕함, 회복할 수 없는 실패, 어쩌지 못한 불행의 폭로로 진행된다. 친구나 지인, 그저 이름만 아는 유명인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주제 모르고 행복해 보이는 것이 못마땅한 것일까. 행복해 보인다는 것의 근거도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좀 더 대범한 사람은 상대에게 대놓고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농담을 빙자해서 외모를 깎아내리거나, 상대의 과거 언행을 굳이 기억했다가 현재와의 모순에 빗대어 놀리거나.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지만 명백한 공격 행위다.      

인간에게는 대부분 공격성이 내재하여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리고 평화로운 상태라면 그것이 굳이 발현되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The Laws of Human Nature>에서 유난히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그에 대한 조바심이 발동하는 경우 공격성이 더 발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공격성이 적극성, 주도성과 연관되면 얼핏 긍정적인 재능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멈춰야 할 때를 아는 ‘너그러운 공격자’는 마치 ‘이기적인 박애주의자’나 ‘착한 사이코패스’처럼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로버트 그린은 존 D. 록펠러를 예로 들었는데, 주변 상황을 자신이 통제하지 않으면 엉망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그의 공격성은 자기 주변의 완벽한 장악을 향해 나아가고, 경쟁자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법을 어겨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에까지 도달한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이러한 공격성 역시 더욱 세련되어지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연히 봤을 땐 환한 얼굴로 반가워하며 손을 꼭 잡지만, 따로 연락하면 죽어도 전화를 받지 않는 예전 상사, 어쩌다 만나면 ‘왜 요즘 남편은 안 보여요? 통 못 봤네.’ 하며 안부 인사를 빙자한 나쁜 상상을 하는 이웃, 좋은 소식에는 얼른 화제를 바꾸고 나쁜 일에만 ‘어머, 그래서? 그래서?’하고 반응하는 친구, 자기 가정의 불행을 주변의 탓으로 돌리며 험담을 쏟아내는 지인…. 이런 사람들을 보면 그것이 그들 나름의 공격성의 발현임을 깨닫고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생각을 바꿔주기 위해 당신이 노력하는 일은 부질없다. 그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공격성의 바닥이 어디쯤일지는 그들도 모를 것이다.      


삶에서 좌절이나 분노, 위협이 반복된다면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대해 ‘나도 모르게 그랬다’, ‘너무 두려워서 그랬다’ 같은 변명을 늘어놓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것이 중독과도 같아서 한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공격을 멈추면 자신이 무력하거나 약해진다고까지 착각하게 된다. 따라서 더 망가지기 전에 스스로 얼마나 공격적으로 될 수 있는지, 언제 멈출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생각해두어야 한다. 만약 당신에게서 공격성이 불쑥 올라온다면 얼른 멈추고, 방향을 틀어 자기 업무나, 청소, 운동 같은 것을 향해 긍정적으로 쏟아붓기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도 지키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망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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