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나라 인터넷은 이효리 관련 뉴스가 도배를 했었다. 애완견과 외출했다는 소식부터 자동차가 바뀌었다는 소식까지 시시콜콜 알려졌다. 가장 연예인다운 연예인인 그녀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기자들은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제주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서울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렸다. 팬은 아니었지만 아쉬웠다. 거짓말처럼 그녀의 소식도 뜸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것이라는 예고를 보게 되었다. 뭐지? 관심이 필요해졌나? 숨어서 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뭘 보여주겠다는 거지? 나는 그녀의 선택에 조금 삐딱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능숙한 그녀와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던 시청자 모두에게 제주도의 예쁜 집과 연예인 부부의 숨겨졌던 일상이란 흥미로운 콘텐츠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민박이라는 컨셉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너무 부담스러운 일 아닌가. 그녀의 선택에 대해 나는 왜? 라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을 너무 오래 쉬었나? 이효리 부부는 그다지 연예인 같지 않았다. 심지어 카메라를 어색해하고 불편해 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이효리가 이 프로그램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언급한다. 모르는 사람들과 먹고 자고 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친구 아닌 사람과 친구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어느덧 중년이라는 나이를 향해 가고 있던 그녀도 이제 관계 맺기의 필요성에 대해 자각을 했던 것이 아닐까. 제주로 이주하면서 본의 아니게 많은 관계를 단절하게 되었고 그런 후에야 그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연예인으로 살면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보통의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에 대해 정말 더 늦기 전에 배우고 싶어졌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사람은 왜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제야 나는 그녀가 방송을 시작한 의도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은 성공했다. 2편까지도 대성공했다. 삐딱한 시청자였던 나는 한동안 <효리네 민박>을 BGM처럼 틀어놓고 살았다. 한국 연예인을 전혀 모르던 남편조차 그녀를 기억할 정도로. 물론 가수 아닌 ‘제주도에서 민박집 하는 여자’로서 말이다.
1편에서는 민박 스태프로 가수 아이유가 온다. 손님과의 관계 맺기에 앞서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가 새로 설정된다. 누가 오는지 모르고 있던 이효리는 아이유가 대문의 벨을 누르자 깜짝 놀란다. 자신을 직원으로써 막 부려먹으라는 아이유의 말에 ‘널 어떻게 부려 먹니?’ 라는 대꾸로 ‘잘 나가는 후배’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곧이어 민박객들이 들이닥치고 이효리 부부는 침실을 내어준 채 거실로, 작업실로 계속 밀려난다. 매일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돌아서면 청소와 저녁식사 준비가 기다린다. 한숨이 나올 빠듯한 일정이다. 손님 한 명이 집에 머물러도 몸살이 났던 나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정말 그렇다. 그럼에도 이효리 부부는 크게 삐끗하지 않고 끝까지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의미 있게 완성시키려 노력한다. 청각장애가 있던 숙박객과의 심도 깊은 대화, 준 스태프에 가까웠던 과학 탐험가들과의 친밀한 시간 등 숙박객들과의 교감도 이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그러다가 다소 뼈아픈 장면과도 마주하게 된다. 한 소녀 팬이 우연히 아이유를 보고 감격해서 울음을 터뜨린 것. 같은 가수인데, 왕년엔 더 유명했었는데 이효리는 안중에도 없고 소녀는 아이유 앞에서만 무장해제한 것이다. 질투가 생기지 않았다면 거짓이리라. 하지만 이효리는 그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고 드러내면서 그것이 어두운 그림자가 되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 감정을 남편에게 토로하고 충분히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2편을 찍었다. 이번엔 윤아라는, 키 크고 얼굴 하얀 아이돌이 스태프로 왔다. 부부가 사는 집에 젊고 예쁜 처자만 자꾸 보내는 제작진의 의도가 궁금했지만 이효리는 윤아의 ‘예쁨’을 어른스럽게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틈틈이 윤아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가 브루노 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라는 노래에 맞춰 뮤직비디오로 제작해 선물한다. 여자 연예인으로서 자신이 현역에서 멀어져 있음을 자꾸 확인시켜주는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나였으면? 도중하차했을 수도. 하지만 이효리는 기죽지 않고 그 상황에 맞는 관계를 성실하게 맺어갔다. 능수능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최선인지 알고 있었다. 건강했다. 쿨했다. 그리고 과하게 착한 척, 친절한 척 오버하지 않았다. 사람을 맞이하는 모습보다 떠나보내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편안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누구라도 곁에 있었을 때 최선을 다했으면 이별이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은 법이니까. 촬영 과정이 쉬워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해냈다. 순간순간 정직하고 진실하게 그러나 자신다움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미션을 완수한 그녀를 보며 나도 덩달아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이제 제주도에 이효리는 없다(고 한다.) <효리네 민박>3편 소식도 조용하다. <효리네 민박>은 이대로 영원히 막을 내린 듯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름이 오면 1편이, 겨울이 오면 2편이 생각날 것 같다. 방송도 때론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