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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Dec 10. 2018

날 귀찮아하는 건 아닐까?

상대방이 ‘귀찮아!’ 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전화를 오래도록 받지 않을 때, 부재중 전화에 답을 하지 않을 때, 카톡을 보지 않아 1이 계속 사라지지 않을 때……. 그런 때엔 불쑥 상대가 날 반기지 않는구나, 귀찮아하는구나 하는 의심이 든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애인도 아닌데 뻥 차인 느낌 때문에 표정관리가 어렵다. 이게 업무나 비즈니스 연락이면 나는 불쾌감을 정당하게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에서는 누구도 갑이 아니고, 누구도 을이 아니다. 상대방의 재량에 맡겨야 하니 더 어렵다. 휴대폰이나 SNS 때문에 연락은 정말 용이해졌지만 그만큼 관계에서의 피로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에겐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어떻게 용기내서 한 연락인데. 제발 나를 귀찮아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물론 제정신에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냥 좀 바빴어요.”

“알람을 꺼놔서, 미안!”

대부분은 이런 반응으로 끝이다. 그나마 반응이 오면 다행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오래 전 나의 부재중 전화에 답을 하지 않은 A와는 그날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서로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싸운 적도 없었는데. 이제 그녀와는 길을 가다 만난다 해도 아는 척을 못할 것 같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A가 나의 연락을 귀찮아했던 것이 사실 같아 내겐 상처로 남아 있다.    


‘귀찮아하는 감정’이 우리에게 불편한 것은 그것이 결국 거절이나 부정적인 감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연애가 막 시작되었을 때엔 상대의 연락이 귀찮을 리가 없다. 연락이 오기도 전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보낸 카톡, 상대가 하는 안부전화가 귀찮아졌다는 건 더 이상 상대가 반갑거나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뻔하고 지겹고 식상해서 대꾸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이 관계에서의 귀찮음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를 귀찮아할 때엔 당당하다. 쓱 한번 휴대폰을 보고는 덮어버린다. 하지만 상대가 날 귀찮아하는 걸 눈치 채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고 따져 묻지는 못한다. 동공지진만 일으키다가 쓱 주저앉아버리게 된다.      


그럼 상대가 날 귀찮아하는 조짐을 보일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첫째, 귀찮음은 아직 적대감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자.

즉 부정적인 감정의 시작일 뿐 절정은 아니다. 솔직히 서로 싸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슨 트러블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만 좋지 않은 타이밍에 연락을 꾀한 것이 불편했을 뿐이다. 남친과 싸우고 있는데, 지갑을 잃어버려 황망한데, 상사에게 야단맞은 후 창피해서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은데 이모티콘과 함께 날아온 천진난만한 메시지에 대꾸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니 너무 빨리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에게 한 템포의 여유를 주도록 하자. 나는 A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며칠 뒤 다시 연락해본다면 상대도 다른 태도를 보일지 모른다.


둘째, 대화의 질에 대해 돌아보았으면 한다.

아무리 편한 사이라고 해도 알맹이 없이 반복되는 하소연, 불평, 험담, 자랑은 사람을 지치게 하다. 휴대폰에 번호만 떠도 ‘또?’하며 한숨짓게 되는 것이다. 너무 쉽게 질문이나 부탁도 남발하지 말도록 한다. 웬만하면 직접 해결하자. 아울러 단톡방에 ‘좋은 글’이라며 화려한 메시지를 올리는 것도 자제했으면 한다. 대부분의 ‘좋은 글’은 그저 ‘정체 모를 진부한 글’이니까 말이다.


셋째 그래도 상대와의 관계를 계속 지켜가고 싶으면 잦은 연락보다 기도를 해주도록 한다.

기도가 낯설다면 상대에게 긍정의 텔레파시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쉽다. 사실 전화나 카톡은 상대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내가 너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너도 보여 봐. 어찌보면 강요다. 상대는 굳이 안 그러고 싶을 수도 있다. 경황이 없을 수도 있다. 일방적인 연락은 내 고집이고 내 욕심이다. 10번에 5번은 나의 선한 마음을 그 사람에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분명히 있다. 그 사람은 바쁜 와중에 문득 ‘어? 왜 갑자기 B가 생각나지? 잘 지내나?’ 궁금해 하게 된다. 서로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마음이 있으면 관계는 단절되지 않는다. 요란하게 약속을 정해서 만나고 뻑적지근하게 먹고 마시는 모임이 아니더라도 이런 관계는 오래간다.


100% 좋게만 유지되는 관계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귀찮아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고, 내가 귀찮아서 인상 찌푸릴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언제나 서로 반가울 타이밍에 연락하게 되었으면 그리고 만나게 되었으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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