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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Dec 19. 2018

썸은 제발 그만 타시게나

연애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아예 기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라인으로 또는 오프라인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다양해졌음에도 아이러니하다. 40대인데 모태솔로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사람도 보았다. 세상에, 요즘 같은 세상에 모태솔로라니.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럴 만한 환경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의 원흉으로 ‘썸에 만족하는 경향’을 지목하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적당히 썸만 타고 있다.  ‘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귀기 전의 미묘한 관계’라고 한다. 사귀면 사귀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미묘한 관계라니! 개인적으로 나는 썸이라는 관계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어장관리의 영어 버전이고 결정 장애의 데이트 버전일 뿐이다. 만나면 좋고 설레지만 아직 속마음을 모른다? 고백하고 물어보면 되는데 그것까진 하기 싫다는 거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껴야만 연애가 시작되는 것인데, 책임 지기 싫다는 거다. 결국 확답도 없고 미래도 없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어정쩡하고 불확실한 감정뿐이다. 계속 연기만 피우고 불은 때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럼에도 썸을 연애로 착각하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시간만 낭비하고 오해가 쌓여가게 되는 것이다.     


<플립Flipped>이라는 영화가 있다.(여기에서 flipped은 ‘홀딱 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소년 브라이스와 그에게 첫눈에 반한 앞집 소녀 줄리의 이야기다. 줄리는 브라이스에게 바로 대쉬하지만 브라이스는 막무가내인 그녀가 영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나 줄리를 오래 지켜본 브라이스의 할아버지는 그녀에게서 남다른 근성과 영민함을 발견하고 브라이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in flat)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잘난(in satin)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제법 그럴싸한(in gloss)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무지개처럼 찬란한(iridescent) 사람을 만나는 법이야. 그런 사람은 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가 없단다.”

앞에 나열된 평범한 사람, 잘난 사람, 제법 그럴싸한 사람은 결국 썸에 그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진짜배기는 무지개처럼 찬란해서 홀딱 반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대로 브라이스와 줄리 둘은 서로에게 ‘무지개처럼 찬란한 사람’인 것으로 해피엔딩이 된다. 사랑은 이런 것이다. 예뻐서, 돈이 많아서, 조건이 좋아서가 아니다.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라서 신비롭게 빛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제대로 만난다면 홀딱 반해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저 만나다보니 적당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건……그냥 그런 사이라는 뜻이다.  사랑의 감수성이 있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푹 빠질 만한 사람이 없는 걸 어떻게 해요?”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더 촉을 살려서,더 자주,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특히 여성이 소극적인 자세로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위험하다. 여성이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면 나쁜 남자가 접근해오기 쉽다. 거절하는 것도 마음이 독해야 하는데 소극적인 여성에겐 이것이 어렵다. 예쁜 여성인데 나쁜 남자와 잘못 엮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쁜 여성일수록 더 빨리 나쁜 남자의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여성이 먼저 괜찮은 남성에게 다가가는 게 낫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절대로 방에 혼자 틀어박힌 채 내 인연은 어디 있을까,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가끔 내가 외계인이라는 상상을 한다. 내가 사는 별은 ‘문화’도 ‘관계’도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곳이다. 그런데 지구라는 별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 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 연애라는 것도 하고 또 결혼이라는 것도 해서 한 집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면 우와, 이건 정말 재미있겠는데? 나도 해보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지 않은가. 다행히 우리는 지금 모두 지구에 살고 있다. 그러니 계속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무지개처럼 찬란한 사람이 되든가, 그런 사람을 열심히 찾아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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