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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hae Lee Oct 13. 2019

05. 제대후 첫 회사. 통신 상담을 하다.

PC가 나의 군생활을 돌보다. 

제대후 얘기를 하려다 군 생활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군대에 전산병이 있다는것을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지원을 했을텐데요. 주위에 IT쪽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어 있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보처리기능사 이상 가진 사람만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대상도 되지 못했습니다. 신병교육 6주후 중대 배치를 받고 신병생활을 열심히 하던 어느날 중대PC가 고장이 났는지 수리할줄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전 용산 수리 경험을 살려 볼줄 안다고 했습니다. 저녁에 중대본부에 가서 PC를 살펴보았습니다. 먼지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더군요. 그래서 분해 후 청소를 깔끔하게 하고 다시 조립해서 전원을 켰더니 다시 살아 났습니다. 엄청 중대장이 좋아하더군요. 내진김에 워드도 할줄 아냐고 해서 한다고 했더니 몇일후에 보자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장장 일주일을 부려먹더군요. 근데 일주일동안 좋은게 한가지는 있었습니다. 모든 외각근무와 불침번을 예외시켜주었습니다. 전투세부규칙이라고 전시상황때 작전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작성한다고 저를 잡아둔 것이었습니다. 보통 7시에 시작해서 10에 재워줬으니 매일 15시간씩 정도를 부려먹은 것이지요. 여튼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하루는 워게임이라고 가상 전투 시뮬레이션을 한달정도 파견을 나가는 것이었는데 저를 또 보내더군요. 그래서 신나게 다녀왔습니다. 다른 중대는 아저씨라 불리며 그렇게 크게 다른 선임들을 신경쓰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자대 복귀후에 몇개월 있다가 사단 본부로 불려갈 일이 있었습니다. 워드를 잘하는 사람들만 전 부대에서 모아다가 연대장급 이상의 작전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거기에 또 이주일간 파견되었습니다. 사단본부에 가니 영관급은 그냥 사병이더군요. ㅋㅋ 

사단본부 회의실에 갔더니 역대 사단장 사진이 있던데 딱 전두환하고 노태우가 있더군요. 예 맞습니다. 전 전진부대인 1사단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렇게 워드만 치면서 이주일동안 훈련이 면제되면서 편하게 생활했습니다. 이렇게 1-2개월정도 자대에서 훈련과 외각근무와 불침번을 서지않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제대후 첫회사. 

말년병장때 제대후 뭘할까.. 다시 용산에나 갈까 했지만 그러긴 싫었습니다. 재미도 있었지만 스승도 그 매장에서 퇴사했고 주말마다 일하는거, 매출압박을 받는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구직공고를 보던 찰나 한국통신에서 인터넷 전화 상담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거다 싶어 이력서를 써서 입사 지원을 했는데 통과가 되었습니다. 전 마지막 병장휴가를 내어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관이 질문하기를 언제 제대하냐고 해서 곧 제대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전문대졸 이하는 안뽑는데 성의와 자세가 좋아 뽑아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대에 복귀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합격 소식이 날라왔습니다. 정말 뛸듯이 기뻤습니다. 이렇게 전 제대후 첫 회사를 좋은곳에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기입이니 만큼 1주일을 합숙 교육을 했습니다. 대전의 한국통신 교육센터였던것 같은데 너무 오래되어서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ㅜㅜ 

그곳에서 네트워크 이론에 대해 배웠습니다. 허브, 라우터, 스워치, 광케이블등의 네트워크 장비와 T1,E1등전용선, PSTN, ISDN등의 전화망등 고루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네트워크 지식들을 지금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때당시 나름대로 개인적으로 네트워크 책을 구매해서 열정적으로 공부도 했습니다. 그리고 업무가 고객 기술 상담인만큼 전화응대 기술도 배웠습니다. 거울을 보고 웃으며 ‘안녕하십니까, 한국통신 기술지원센터 xxx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역대급으로 제 얼굴이 어색하고 이상해보였습니다. 정말 어색하고 이상해서 지우고 싶었습니다. 저 어색한 미소와 표정... 웃어도 웃는게 아닌.. 나중에 다른분들에게도 물어보니 다들 어색했다고.. ㅋㅋ 저만 그런게 아니더군요. 다들 킥킥 웃어대고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푹푹.. 잼있는 교육시간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이런저런 얘기하느라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여기저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물론 음주도 하고 통닭도 시켜서 먹었습니다. 원래는 외부 음식이 반입이 안되지만 우리사전에 안되는게 어디있겠습니까. ㅋㅋ 007작전을 방불케 은밀하게 위대하게(?) 가져와서 냠냠 맛있게 먹으며 새벽까지 놀다가 그 다음날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일이 금방 가게 되었습니다. 



신기록 갱신, 그저 열심히 한것 뿐인데..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출근을 하였습니다. 파트는 두 파트로 나뉘었습니다. 한팀은 ADSL같은 초고속(?)인터넷팀, 한팀은 PSTN팀이라고 해서 전화망으로 통신하는분을 위한 상담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좀 오래일할것 같은 사람을 초기 인터넷 초고속 통신망인 ASDL팀, 금방 퇴사할것 같은 사람, 혹은 저처럼 고졸을 PSTN팀으로 배정했습니다. 뭐 근데 딱히 기분나뿐것도 아니었습니다. 뭐 학력짧은게 사실이라면 사실이라서요. 면접부터 쓸데없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이 회사는 원래 그렇구나라고 인식을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가 있습니다. PSTN팀은 컴퓨터를 잘 알아야 했습니다. 전화망을 이용하는 통신상담이기에 모뎀과 드라이버, 그리고 PC하드웨어같은 기초 지식이 있어야 상담이 가능했습니다. 일단 팀의 성격은 이랬습니다. 같은 동기 수료생들이 분리되어 각각 팀으로 이동하고 팀 안에서 한명씩 선배들이 붙어서 맨투맨으로 일주일씩 교육해주었습니다. 하루는 선배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이틀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상담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꺄악~~~ 미쳐버리겠더군요. 제 입에서 이런 말이. 흐미흐미흐미. 제 얼굴이, 제 목소리가, 제 말투와 저런 느끼한 말이.. 상상할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였기에 이를 악물고 했습니다. 삼일차 사일차 좀 지나니 입이 좀 익숙해지기 시작했는지 적응이 되더군요. 일주일 이주일 넘어가고부터 상담방법이 익숙해지고 이때부터 저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워낙에 모뎀A/S도 용산에서 많이 해보던 저였기에 증상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일사천리로 해결을 해 주었습니다. 고객이 말하는 증상은 달랐지만 대부분 하드웨어, 드라이버, 통신선로로 크게 장애가 나뉘었습니다. 그것을 깨우치니 상담은 뭐 일사천리로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입사 선배들이 저에게 묻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이 되는지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제 일만 그저 재미있어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입사 5개월만에 우수 사원 후보에 올랐고 그 다음달에 상담 우수 사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콜수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고 고객상담이 잘 되어야만 주는 그런 상이었습니다.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상을 받아보니 얼떨떨하더군요. 그리고 ADSL팀에서 팀 이직 권고를 받았지만 당당히 걷어찼습니다. ADSL상담은 솔직히 모뎀 재부팅을 해보고 안되면 기사를 부르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가 없었죠. 하지만 PSTN은 제가 가장 재미있었고 또한 고객과 상당담을 하면서 재미있는 분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파트장님이 저에게 안가면 안되냐고 저 꼭 필요하다고 고양이 눈으로 봐주셔서 강제로(??)남게 되었습니다. 


진상 고객을 경험하다. 

어느 콜센터나 마찬가지지만 진상 고객이 있습니다. 이때는 고객이 무조건 갑이라 화를 내도 성희롱을 당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던 때였습니다. 가끔씩 여성분들이 상담을 하다가 문을 걷어차고 옥상으로 담배를 피러 올라갈때 그마음, 이해하고도 이해하고도 또 이해가 되었죠. 전 운이 좋았는지 잘 피해갔었는데 야간 근무때 걸렸습니다. 아 참고로 이때 초고속 인터넷이 막 뜰때라 SK, KT, 데이콤등 모든 통신사들이 24시간 통신상담을 할 때였습니다. 저희도 2교대로 아침 9시-6시, 6시-다음날9시 이렇게 2교대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드디어 저에게도 진상 고객이 걸렸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 접속 아이디네요. jindoxxxx진도로 시작하는 60대 남자였는데 정말 오만가지 다 방법을 동원해도 인터넷 속도가 안나오고 전화국도 멀어 방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방법은 위성 인터넷뿐이었는데 그것으로 바꾸기 싫다고 요금이 더 나올건데 너희들이 내줄거냐며 계속 하소연하고 얘기하고 자기말만하고 욕해대고 여하튼 진상 중에 진상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팀장이 고객집에 가서 해지하라고 무릎꿇고 빌었는데도 해지는 안하고 계속 전화해서 자기말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당시는 고객전화를 마음대로 끊을수도 없고 고객이 크레임을 걸면 그대로 당해야 하는때라 참 답답하더군요. 한번은 말이 안통해 그냥 끊어버렸더니 저에게 크레임이 오더군요. 그인간 누구냐고.. 열받아서 저도 같이 퇴사할 각오로 욕하려고 하려던 찰나 파트장이 저를 막아서고 참으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사고치면 저희 파트장이 징계를 받게 되더군요.. 그래서 정말 참고 또 참았습니다. 파트장님이 워낙에 좋으신 분이라 팀원들도 다 말을 잘듣고 서로서로 챙겨주는 그런 팀이었습니다. 이렇게 이 회사를 다니면서 깨닫게 된게 상담원이나 고객과 대면하는 업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왠만하면 전화도 그냥 안끊고 항상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얼마나 고된 노동인가를 알기에... 최근에 감정노동자 배려 캠페인을 보면서 진작에 했어야 하는 거였는데 왜 이제 하는걸까 아쉬움이 큽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 

회사를 다니다가 문득 미래에 대해 두번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이 직업도 오래 할수 있는것도 아니고, 동기중에서는 복학한다고 관두는 사람들도 하나 둘 퇴사할때였습니다. 그리고 다들 이제 이 업무에 익숙해져서 그냥저냥 다닐때였습니다. 친구들을 만났을때 다들 대학교 생각없냐고, 아무리 그래도 학벌 나라인데 무시할수 없다고 서로 얘기하던 때였습니다. 그때당시 제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없었고 바로 직장을 구해 다니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그 얘기를 듣고 저도 고민이 좀 깊어졌습니다. 수능점수는 거의 바닥이고 할줄아는건 이거밖에 없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찰나 친구중 한명이 고등학교에 가보라고 하더군요. 선생님중에 한분이 나름대로 수능점수와 내신성적 그리고 기타 점수(자격증점수)로 진학할 수 있는 대학교를 알려준다고 하더군요. 전 그말을 듣지마자 학교로 갔습니다. 찾아가서 선생님을 찾았는데 그분 표정이 좀 많이 황당하신 표정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 연락한번 없고 졸업도 몇년이나 지난 시점에 졸업생 인간이 찾아와서 나 어디 대학교 지원할 수 있어요? 물어보는데 얼마나 어이없으셨을지..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참 황당한 사람이었던게 확실합니다. 그러나 제 인생이 걸린 일이었기에 절실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제 성적표와 기타 몇개를 보시고 대학교를 찍어 주셨습니다. 전 찍어주신 모든 학교를 다 지원했습니다. 다행히 선생님이 예상해주신 모든 대학교에 합격하였고 어디로 갈지 고민만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더군요. 참고로 4년제 대학교는 아니고 전문대였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6월에 제대후 그 다음해 1월까지 회사를 다니고 고양이 눈빛으로 저를 말리시는 파트장님을 뒤로한체 회사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3월 제 월급을 탈탈털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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