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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hae Lee May 12. 2019

04. IT의메카 용산에 입성하다.

IT 분야로써의 인생을 시작

공고생 내삶의 진로를 고민하다.

저는 공고 전자과를 다녔습니다. 저는 외동 아들이고 제 미래와 진로를 혼자 고민하다 보니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였습니다. 컴퓨터 관련 학과가 상고에 있는지도 몰랐고 이유없이 남자면 당연히 공고지! 하는 쓸데없는 자존심같은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은 흘러흘러 그냥저냥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또한 3학년 2학기때는 현장실습이라고 해서 무조건 취업을 나가야 하는 현장학습날이 도래했습니다. 학교에서 찔러주는 아무 공장이나 가야하는 그런날이 왔죠. 강제로 어떤 첫 회사에 취직했었는데 거기는 혈압계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저는 그것을 연구하는 곳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그곳에서는 조립을 하지 않고 제품이 고장날시 왜 고장이 나는지, 덜 고장이 나오게 할순 없는지 연구하는 곳이었습니다. 전 거기에서 거의 매일 칼퇴근을 했는데 현장직의 다른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일주일에 두세번은 잔업과 야근을 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미안했었습니다. 나혼자 칼퇴근을 하고 있었다니.. ㅜㅜ. 전 당연히 그 친구들도 일찍 퇴근하고 그러는줄 알았습니다. 퇴근할때즈음 늘 그친구들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근데 그게 야근을 위해 저녁식사를 하러 가던 것이었습니다. 그걸 전 퇴근으로 보았던 것이었죠. 뭐 어쨌든 관심도 회사를 다니다보니 이개월만에 싫증이 났고-원래는 입사부터 전 그 회사에 관심이 없었죠.- 저는 회사를 관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학교에 돌아와보니 선생님은 남취급하고 빨리 다시 취업을 나가라 얘기만했습니다. 취업 건수와 퍼센트가 그 선생님의 성과이니 말입니다. 학교엔 저말고도 몇명 친구들이 회사를 관두고 학교로 돌아와 있더군요. 그중에 고등학교 시절 내내 친하지 않았던 동기 한명이(지금 제 베스트 프렌드가 된) 제가 IT에 관심이 있는것을 알고 혹시 용산에 취직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전 눈이 번뜩 뜨였습니다. '이거다' 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크게 스쳤고 그 즉시 저는 아는곳이 있냐고 꼭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로 취업 신청서를 학교에 내고 다음날 바로 용산 터미널 전자 상가 4층에 있는 PC매장으로 취업을 했습니다.! 또한 그 친구도 IT에 조금 관심이 있던터라 몇주후 바로 입사를 해서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용산에 입성. 스승을 만나다.

드디어 원하는 일을 할수 있었습니다. 제가 꿈꾸던 PC를 조립하고 셋팅하고 유지보수하고 고치고 하는 일을 할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취직한 용산 매장은 매출이 꽤 크던 매장이었습니다. 총판계약을 세군데 정도 하고 있었고 한화 여의도 지점에 대기업 PC가 아닌 조립 PC를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인력도 서울역 LG건설에 파견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한달에 적어도 200여대정도 PC를 파는 그런 매장이었습니다. 사실 그때가 IT 전성시기이기도 하고 IT제품 하면 용산이라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정말 한가정 한PC가 초 절정일때라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든지 돈을 많이 벌수 있을 때였습니다. 또한 인터넷이라는게 발달되지 않아 PC부품 가격을 몰라 깜깜이로 소비자들이 당할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물론 PC통신을 통해 어느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것마저 안하시는 분들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여튼 IT황금기이자 닷컴버블이 한창 끼어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저의 첫 사수이자 스승을 만났습니다. 이름하여 안x수인데 백신 만드신 그분과 이름이 같았습니다. 정말 실력도 좋으시고 전화로 몇분만 응답하면 뚝딱뚝딱 해결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전 그분처럼 되고 싶어서 열심히 배우고 그분이 무언가를 할때마다 옆에서 따라다니며 배웠습니다. PC를 고칠땐 그냥 고치는게 아니라 PC를 알아야 한다고 아픈곳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어떤 칩셋종류의 마더보드를 쓰며 VGA는 어떤거고 OS는 어떤것이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상세히 배웠습니다. 너무너무 재미가 있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이건 이래서 저건 이래서 안되는거다'라는 것을 스승님이 가르쳐 주시면 저는 그것을 정보를 정리하고 내것으로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서울역에 파견나갈 일이 있었었습니다. 그곳에 계시는 분이 장기 휴가를 나가는 바람에 대타 근무자가 필요했습니다. 용산 매장도 기술자가 필요하니 이인자엔 제가 나가야 하는 것이었죠. ㅋ 그런데 그곳에 파견을 나가서 정말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전용선이라는 회선으로 회사 사내망을 하나로 연결해 사용하는 일명 네트워크 시스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료 3메가 짜리를 저는 모뎀을 이용해서 거의 15분에서 20분정도가 넘어야 자료 하나가 받아지는데 전용선은 몇초도 안되서 받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눈돌아가는 환상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는 자료 몇십메가 받는건 일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때였던것 같습니다. 네트워크 시스템을 배우고 공부해보고 싶었던 생각이 들었던 때가 말입니다. 그래서 책방에서 네트워크 책을 사서 공부를 하면서 정말 재밌게 느꼇던 것 같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곳저곳, 여기저기 그렇게 하나하나 배울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신기하게만 바라보던 기술들이 내것이 되어갈때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효율적인 수리를 연구하다.

매장이 번성하여 매출갱신을 거의 매월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장사가 잘되고 PC가 잘 팔리다보니 그만큼 A/S요청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매장 한구석에서 PC를 고치고 있는 저를 보시고 사장님이 하나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당시 터미널 상가 5층이 사무실이었는데 여기에 A/S센터를 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 매장, 그리고 기업체의 수리를 전담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희 매장은 A/S센터를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회사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스승과 전 전담맨으로 PC를 고치고 전화로 오는 기술문의를 해결하는 기술 전담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량의 PC를 고치면서 문제점 하나가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OS의 문제였습니다. 그때당시 윈도우 97이 나오기 전인 윈도우 95를 쓰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도스시절엔 그냥 도스 깔고 하드를 붙여서 불법 프로그램과 게임을 복사만 해주면 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하나 수리하는데 맘만 먹으면 20분 안에 끝낼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윈도우로 넘어오면서 시간이 엄청 길어진 것입니다. 윈도우가 하드웨어까지 직접 컨트롤하고 하다보니 윈도우 설치만 30분이 넘게 걸렸고 하드웨어 드라이버 설정까지 하다보니 한대에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제 스승이 또 아이디어를 만들었습니다. 디폴트 시디. 즉 가장 많이 팔리는 PC사양으로 설치 시디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러면 윈도우 설치 시간을 제외할 수 있으니 엄청나게 빠른 시간안에 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복사만 하여 부팅시키고 드라이버만 설치하여 내보내니 금방 고칠수 있었습니다. 정말 그때당시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방법을 PC매장끼리 공유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한화에 납팜하는 PC사양은 고정적이라 거의 환상적으로 납품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들자마자 프로그램 설치하는데 10분이면 되었으니깐요. A/S를 할때도 그정도밖에 안드니 고객 입장에서도 너무 좋았던 것입니다.


인터넷을 경험하다. TCP/IP

하루는 제 스승이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니 스승이 ‘이게 뭔지 알아? 바로 인터넷이라는거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윈도우에 TCP/IP 라는 프로토콜이 기본적으로 제공된 후에는 인터넷이라는것을 하기 편해졌다고 합니다. 그 이전엔 윈속이니 뭐니 해서 엄청나게 설정하고 삽질하고 했어야 했는데 그런것이 사라진 것이죠. 이리하여 인터넷이란 기술도 이분에게 처음 배웠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도메인이란 주소에 입력만 하면 하이텔에 접속이 되었습니다. 또한 굳이 하이텔 접속을 끊지 않고도 바로 천리안 나우누리등에 접속을 할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청 느리긴 했지만 자료 다운로드도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넷스케이프란 브라우저를 이용해서 URL이란 주소만 입력하면 모든 전세계 홈페이지를 접속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그저 우리나라 4대통신사인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만 있는줄 알아죠. 인터넷은 정말 신세계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배운 이후로 친구들에게 알려주었지만 다들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용산에서의 에피소드

전 판매는 잘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술만 공부하던 엔지니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회사는 PC를 파는게 주 수입원이었으니 주말은 늘 매장에서 근무했습니다. 주말에 매장에서 근무를 할때는 늘 따분했습니다. PC를 잘 팔지도 못하고 말주변도 없어서 그냥 PC만 고치는게 더 좋았습니다. 하루는 견적을 받으로 온 손님이 있었습니다. 전 그분에게 상담을 나름 해주고 견적을 뽑아주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안했습니다. 워낙 잘 팔지도 못하고 늘 손님에게 퇴짜만 받았습니다. 용산에서 근무하는 근 일년동안 10대도 못팔았습니다. 제 친구는 이틀에 한대꼴로 팔았지만요. 또 열심히 파는 이유가 PC를 팔때마다 팔린가격의 5%를 인센티브로 주는게 있어서 다들 열심히 팔았습니다. 전 장사기질이 없는지 잘 안팔렸습니다. 여튼 그렇게 견적을 내주었는데 저에게 사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놀랬습니다. 왜 저에게 사세요? 하고 물어보고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전 그분들에게 판 이후로 개인 연락처도 알려주고 물어보는것마다 대답해주고 AS도 몰래 공짜로 해주었습니다. 그 고객분도 저에게 잘 대해주고 방문때마다 음료수도 챙겨주시고 해서 좋았습니다. 참 그때는 그래도 용산도 방문 AS를 일년정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방문 AS는 가능한 공짜로 해주었습니다. 프로그램도 매장에서 새로 사는 신규 고객은 원하는 프로그램이나 유료 프로그램도 그냥 암묵적으로 깔아주곤 했습니다. 그때당시는 라이선스 개념이 많이 부족해 PC프로그램들은 공로 쓰는 것이다 라는 개념이 대부분의 사람들 머리속에 있었습니다. 하드웨어만 사는것이고 PC를 사면 게임과 운영체제는 그냥 공짜로 주는것이다 란 생각이 기본적인 시대였습니다. 핑계가 안된다는거 압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절대 안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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