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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May 20. 2020

일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기쁨. 15

오월의 한가운데에서

 

    1

  봄비가 며칠간 내렸다. 오월이 벌써 절반이 지났다. 그동안  한 번도 비봉산에 오르지 못했다. 온라인 강의 준비, 과제에 대한 평가 그리고 저녁이 되면 카페에서 글쓰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외적인 것들에는 관심을 둘만 한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강의 외에 잡지사 청탁 원고 세 편, 시집 발문 한 편 그것이 오월의 절반 동안 내가 한 일이다. 

  “열이 위로 뜨네요! 이제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하실 나이입니다.” 한의원 김 원장이 내게 한 말이다. 온갖 생명체들이 생기를 띠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오뉴월이면 통증으로 시름시름하던 나를 위한 처방 중의 하나다. 토요일에는 딸아이의 이사를 돕느라, 하루 종일 짐을 싸고 풀고 운전하고 나니 저물 무렵이다. 게다가 간간이 비가 내리는 탓에 내가 계획하던 산책은 여지없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2

  일요일 오후, 춘곤증 때문일까? 아니면 약 기운일까? 낮잠에 잠시 빠져들었다가 일어나 부산하게 집을 나선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자 며칠 동안 내린 봄비의 기운이 남아서일까. 습기를 머금은 소슬바람이 분다. 습기 때문일까. 뿌연 서녘의 하늘에서 빛나는 저녁해, 이미 짙은 녹색의 잎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 4월 말에는 한창이더니 이제는 초라해 보이는 영산홍이 길가에 무리 지어 있다.

  아파트 뒷길에 연해 있는 작은 언덕은 마치 베트남 사파에서 본 다랑논처럼 층층이 펼쳐져 있다. 주민들은 그곳에 채소를 심었다. 아내도 맨 꼭대기의 교실 칠판만 한 땅을 물려받아 올봄에는 고추 열댓 포기, 가지 세 포기, 토마토 두 포기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케일 두세 포기를 심었다. 처음 심었던 상추는 말라죽었고 나머지 묘목은 봄비를 맞아 어린잎을 펼치고 있다. 내가 화초 삼아 기르려, 한 포기에 삼백 원에 사 왔던 고추 묘목도 이곳에 심겨 있다.  

  뒷길을 지나 오솔길로 접어든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카시아 꽃들이 활짝 피었다. 은은한 향기가 소슬바람을 타고 번진다. 마치 꿈속에 접어드는 듯한 아릿함을 느낀다. 십칠팔 년 전이었던가. 허리 통증으로 불면의 밤을 지낼 때, 베란다 밖에 하얗게 피어있는 아카시아 꽃과 향기…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시월의 강물처럼 

오월이 지나고 있다.

몸속으로 얼음 같은 전류가 흐르고

신경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잠이 들었다.     


먼먼 캄차카, 맑은 강물을

불 밝히며 오르는 연어 떼처럼

아카시아 꽃들이 핀다.     


흰 블라우스를 입고 

어둠 속을 걸어가는   

그녀의 향기를 따라가다

나비가 되었다.

절룩, 절룩이며 

날고 있었다.

-졸시 「얼음의 집. 1」 전문, 시집 『죽산 가는 길』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고통스럽던 날들, 내 몸을 ‘얼음의 집’이란 인식하던 때의 기억이 새롭다.      

  

   3

  선연한 녹색 숲, 하얗게 능선에서 피어나는 꽃들, 산새들의 노랫소리.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쩌면 여유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일상과 욕망의 일부를 비워놓을 때, 마음의 빈자리 그곳에 꽃은 피고, 새들의 노래가 들리고 꽃향기가 스며드는지도…

  구릉 사이를 잇는 다리를 건너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다리 위에서 이 작은 도시의 풍경을 담고, 내가 자주 들르던 비밀정원의 정경을 엿본다. 둥근 지붕에 꽃들이 늘 피어있던 그곳은 주인 할머니의 건강 때문에 요즘은 늘 문이 닫혀 있다. 이제는 정말 갈 수 없는 비밀 속의 정원이 되어버렸다.  

다리 위에서 

  산으로 치닫는 오솔길로 접어들자 말발굽 나무, 가죽나무의 작은 새순들이 내 손바닥보다도 훨씬 크게 자라서 가지를 이루고 있다. 가파른 능선 쪽에 쳐진 목책 위에는 넝쿨장미 몇 그루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제부터는 넝쿨장미가 한창일 때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울타리는 물론 인근 고등학교와 성당의 철책 위로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갈망의 눈빛인 듯 붉은 장미들이 울타리를 타고 올라 피어날 것이다.

  천천히 걸어 올라 약수사에 도착한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법문, 풍경소리, 피어나는 꽃들은 나에게는 덤이다. 나는 늘 정자에 멍하니 앉아서 숨을 고른다. 한 달이 연기된 ‘부처님 오신 날’의 행사 때문인지 연등이 아직 걸려 있다. 언젠가 비구니 스님이 열심히 심던 꽃잔디와 묘목, 수련이 점점 자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는 튤립이 화려하게 피었더니 오늘은 모란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나는 휴대전화 속에 모란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돌아서는 내 발길을 푸른 입술의 붓꽃이 붙잡는다. 

약수사의 모란

  약수사를 지나 팔각정에 오르는 길 곳곳에 간벌된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다. 여기저기 잘린 잡목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문득 숲이 훤하게 비워진 느낌이다. 그런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잘 자란다는 둥치가 큰 리기다소나무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둥산 시절에는 할 수 없이 심은 나무였지만 지금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나무인데… 간벌된 나무 중에는 참나무들도 보인다. 문득 ‘그냥 두면 안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동쪽의 능선을 따라서 토종의 적송들도 잘 자라고 있는데 굳이 리기다소나무를 위해 잡목들을 베어야 할까? 우리가 잡목이라고 취급하는 나무들도 한 그루 한 그루 살펴보면 모두 쓸모가 있는 것일 텐데… 그저 나만의 생각이고 편견일 수도 있다고 치부하면서도 지난 사월에는 모두 살아있는 생명으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던 나무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처연한 심정이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다 보니 숨이 가쁘다. 팔각정에 올라 잠시 쉬며 소도시의 정경을 내려다본다. 습기와 미세먼지 때문인지 무채색의 도시의 풍경. 하늘과 땅 모두가 지워진 듯한 느낌이다. 감동도 신기함도 없는 경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평소와는 다른 코스로 하산한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올 때 들리는 종소리, 시계를 보지 않아도 오후 6시일 것이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계곡을 타고 번져나간다. 

  한창이던 벚꽃의 기억이 어제인 것 같은데, 길가의 벚나무들이 진초록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오랜만의 산책에 셔츠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 나는 터덜거리며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내가 사는 103동이 가까워진다. 우리 집 창가에 내어놓은 4개의 화분이 보인다. 아내가 얼마 전 사온 피튜니아가 분홍색 꽃을 활짝 피웠다.  


  4

  딸아이가 이사한 옆 도시의 주택단지는 그 도시에서 새로이 주목받는 곳이라고 했다. 훤하게 뚫린 도로, 새롭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들, 하천 변에 조성된 4층의 다가구 주택과 원룸들, 깔끔하게 마련된 산책길 그리고 여기저기 늘어선 커피숍과 상가. 마치 유럽의 주택가처럼 잘 꾸며진 모습이 낯설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집값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분당이나 영통으로 이사 오시지요.” 몇몇 동료들이 예전에 내게 한 말이다. 학교까지 15분, 5분이면 도심에 걸어갈 수 있는, 음주운전과 대리운전이 필요 없는 곳에서 이사 없이 20여 년을 살았다. 언젠가 동료 교수가 말했다. “교수님 내가 오라고 할 때 이사했으면 몇억은 벌었을 거예요!”  

하산하는 길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보드리야르는 산업자본 시대의 네 가지 관점을 논했다. 유용성, 거래, 신분, 증여의 논리다. 이를 가치의 관점으로 보면 도구, 교환, 기호, 상징의 가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거래의 논리와 교환의 가치로 본다면 별 것 없다. 그렇다고 낡은 아파트가 새로 지은 아파트보다 편리하고 안락할 것도 없으므로 유용성(도구)의 관점으로 보아도 별로다. 그러면 기호의 가치(신분의 관점)로 보면 어떨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새로 지은 더 넓고 비싼 아파트로 이주하고 이제는 평범한 서민들이 사는 곳이므로 고귀한 신분이나 지위를 드러내는 기호의 가치도 희박해졌다. 나머지 상징의 가치는? 한국에 처음 포도를 들여온 프랑스 신부가 포도밭을 만들고 재배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맞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전통과 스토리가 깃든 명소나 유적지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가? 아마 정답은 ‘돈이 없어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꼭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른 아침 베란다를 열면 비봉산 기슭에서 내려오는 맑은 공기, 밤하늘을 고요하게 흐르는 소쩍새의 울음,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자락, 늘 곁에 있는 산책로와 등산로. 몇 년이 지나 내가 은퇴한 뒤에는 산책로와 산기슭은 나의 놀이터이자, 헬스장이 될 것이며 사색과 작품 구상의 공간이 될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자본과 욕망의 핏빛 눈초리로는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소중한 가치들이 즐비한 곳임을 요즈음 느끼게 된다. 보드리야르의 말년의 저서 『암호』에서의 생각처럼 교환이 불가능한 ‘존재’, 세계에 던져진 ‘선물’이 즐비한 곳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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