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그가 색과 관련하여 선택하는 모든 것은 노란색으로 선택한다. 물을 마실 때도 꼭 노란색 컵을 찾는다는 걸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 있다. 첫째 아이도 그랬다. 지금의 2윤이 처럼 어릴 땐 모른 색칠을 핑크로 하고 그 역시 색과 관련하여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핑크로만 했고 마시는 컵도 항상 핑크색만 찾았다. 조금 크니 어느 날부터는 초록색도 좋아하고 파란색도 좋아하며 색은 크게 상관 없어진 듯했고 2윤이가 노란 컵을 찾을 때면 "2윤아 물은 다 똑같아 컵의 색은 중요한 게 아니야" 하며 엄마가 했던 잔소리를 똑같이 하곤 했다.
어제저녁, 내가 식사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부르며 물은 스스로 떠서 오라고 했다. 둘째는 그냥 앉았고 첫째 아이가 물을 뜨러 왔는데 쌓여 있는 컵 중에 위에 있는 컵을 집으려다 밑에 있던 노란색 컵을 집어 들고는 보란 듯이 마신다. 그전까지 한창 둘이 쫓고 쫓기는 놀이를 했기에 일부러 동생이 좋아하는 색을 고르고 약 올리려는 놀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둘째 아이는 의자에 앉아 형이 마시고 있는 노란 컵을 달라고 했고 둘이 실랑이를 하더니만 기어이 1윤이가 물을 한가득 바닥에 쏟았다.
그때부터였다. "1윤아~!!!!" 하고 언성을 높이고나서부터 화가 났던 나의 마음은 그날 저녁 내내 수시로 튀어나왔다. 2윤이의 욕실에서 소리 지르기(3번의 부드러운 경고에도 보란 듯이 또 질렀을 때), 2윤이 팬티에 실례하기, 1윤이 놀이하는 종이가 찢어졌다고 울기, 둘이 같이 거실에서 뛰기... 그날따라 유독 아이들이 말썽쟁이였는지, 나의 마음이 평소와 다를 바 없던 아이들을 말썽쟁이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수차례 화를 낸 엄마를 본 후에도 아이들은 금세 하하 호호 웃으며 기분을 전환시킨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현명한 엄마가 되려면 기분에 따라 아이를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기분을 'UP' 시키기까진 못해도 그냥 그런 상태로 내 나름대로 노력하며 놀다 누웠고 잠들기 전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며 잠이 들었다. 저녁시간 내내 화가 났던 나는 자는 동안 편하게 잠들지 못했는지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두통이 온다. 그래도 그럭저럭 평소보다 수월하게 등원을 한다 싶었는데 첫째 아이가 뜬금없이 말을 꺼낸다.
"엄마 어제 내가 일부러 심술부리려고 노란색 컵으로 마신 게 아니라 나도 이제 노란색을 좋아하게 된 거야. 그래서 노란색 컵을 사용한 거야."
첫째 아이도 나와 같이 어제 일이 마음속에 담아져 있었는 모양이다. 아이는 내가 심술부리느라 노란 컵을 사용했다고 말한 게 가슴에 콕 박혔겠지... 근데 이걸 또 어제의 행동을 제시하며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받아쳐야 하나, '그래 그랬구나' 하고 공감의 말을 하며 마무리를 해야 하나 순간 고민이 들었다. 아이가 그렇게 얘기했지만 나는 여전히 1윤이가 자신의 말처럼 그저 노란색이 좋아져서 그랬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매번 노란색을 찾는 동생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마셨을 수도 있겠지만, 재밌는 장난 정도로 생각하고 한 행동이 물을 쏟는 바람에 꾸중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이를 면피하기 위한 핑계로 생각해 낸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바쁜 등원길이라 나의 현명한 대응은 뒤로 미루고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그 상황이 스쳐 지나갔고 출근한 나에게는 그 일이 계속 남아있다.
1윤이가 내년이면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때문에 요즘 그의 사회성, 인성에 매우 신경이 쓰인다. 여기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작은 일 하나하나 교정하려고 애쓰게 된다. 아이의 교우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인상을 받으면 당시 정황에 대해 모두 알고 싶어 꼬치꼬치 묻게 되고 "어떻게 행동했느냐", " 왜 그랬느냐" 연쇄적으로 확인하려고 한다. 나의 이 강박과 같은 물음이 아이의 입을 다물게 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저 공감의 수준으로 반응해야지 하고 애를 쓰고 있지만 상황이 닥치면 참고 참으려다 결국 그중 한두 가지는 묻고 만다. ("그렇게 하니까 친구들이 안 놀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었으나 이것만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자라고 머릿속에서 수차례 다짐한다. 어느 날 나의 비이성이 튀어나오는 날 뱉어버리게 될까 봐 무섭다.)
요즘 계속 이런 고민이었기에 이미 중학생이 된 자녀를 둔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비슷한 얘기를 했더니 자기 첫째 아이(남자)도 어릴 땐 그런 것 같더니, 지금은 친구들과 잘 지낸다는 말을 듣고는 조금 내려놓자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아들이 우리 1윤이와 정말 비슷한 상황일 수도 있고 그저 공감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공감이 나의 마음을 조금 누그러지게 하는 것 같긴 하다. 공감의 힘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새삼 느낀다. 작은 공감을 통해 나의 마음은 걱정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과 아이의 타고난 성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건강하게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게 현명한 일인가 하고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대충 넋 놓고 흘러가는 대로 지내다가는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으며 훌쩍 커 버릴지도 모른다. 매일 책을 읽거나 문제 됐던 상황을 복기하고 문제의식을 갖고 반성하며 아이를 대해야 조금이라도 교정된 나의 모습이 나온다. 아직도 나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지만, 집에 가는 길엔 이 기분을 떼 내어버리고 아무 걱정이 없이 편안하고 공감능력 최대치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