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0
2023.09.20
개인적으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지라 올해 유독 눈여겨본 뉴스가 두 가지다. 하나는 Chat GPT 관련이고 다른 하나는 2월 교육부 장관이 직접 발표한 ‘AI 디지털 교과서’다.
올 Chat GPT는 뉴스를 듣는 소비자가 이를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온갖 매체가 이를 경쟁적으로 다루었다. 나도 실제 사용하면서 감탄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본격적인 인공지능 시대의 시작을 알리며, 여기저기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을 Chat GPT가 통과했다느니, 대학생들이 이를 사용해서 에세이를 냈는데, 최고 점수를 받았다느니, 소설을 Chat GPT가 썼는데 사람이 쓴 것보다 낫다느니, 미국 교육 당국에서는 Chat GPT 사용을 금지한다느니, 앞으로 어떤 직업들이 없어질 것이라느니, 뉴스를 듣고만 있어도 어질어질하고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그랬을까 갑자기 대한민국 교과서에도 AI(인공지능)가 옮겨붙었다. 계획을 살펴보니 2028년부터는 디지털 교과서로 전면 전환한다고 한다. 교수 출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직접 향후 추진 방향을 발표하면서 AI 디지털로 가는 것이야말로, 신기술을 사용하는 것처럼 포장하였고, 또한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는 것처럼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엉터리다. 교실 안의 수업이 어떻게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간)의 두뇌를 자극하여 학습이 일어나는지 생각하는 학자라면 양심상 저런 과장광고는 감히 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초·중등 교육은 중요하다. 이 말에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중요한 교육이 일어나는 단위는 학교의 교실 안이다. 그 공간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와 행위로 인해 일어나는 것을 학습이라고 하며 이를 총칭해 교육이라고 한다. 따라서 교육 과정에서 기존의 종이보다 ‘디지털’이 교사와 학생 간의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작용하여 더 좋은 효과를 내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직관 즉 교과서가 종이일 때보다 ‘디지털’ 그것도 ‘AI 디지털’로 바꾸면 ‘더 좋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이를 판단할 근거를 교육부는 탄탄하게 가지고 대한민국 교사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AI로 하면 일대일 맞춤 학습이 된다고 하는데, 그 역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마술처럼 그렇게 동작한다고 가정하고, 확장해서 상상해보라, 학교라는 교육 공간이 필요할까? 학교 교육을 이끄는 교육부가 필요할까? 당연히 필요가 없거나 역할이 매우 작아진다. 너무 막 나간다고 생각한다면 그 마술이 왜 동작하지 않을 것인지 과학자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간단히 설명해보겠다.
설명 전에 많은 교사 혹은 성인들은 이미 디지털화되는 것이 학습효과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한 예로 요즘 거의 모든 강의에서 PPT를 많이 사용한다. PPT는 과거 칠판에 판서하는 것에 비해 학습에는 효과적이지 않다. 왜 효과적이지 않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MIT 인공지능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故 패트릭 헨리 윈스턴 (Patrick Henry Winston) 교수의 이야기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칠판이나 화이트보드의 판서를 하면 몇 가지 이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휙휙 지나가는 슬라이드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간)의 정보처리 속도에 비해 너무 빠르다. 그러나 교사가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속도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간)가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고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써 내려가는 손에 사람들의 주의가 끌린다는 점도 이점이다. 우리의 생각보다 손이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더 중요한 점은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 때문이다. 거울신경세포가 최근 10년간 신경과학 분야에서 이룬 중요한 발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일부 과학자 중 V. S. 라마찬드란은 거울신경세포가 모방과 언어 습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거울신경세포로 인해 우리는 미러링(Emphatic mirroring) 즉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로 인해 교사가 칠판에 쓴 것처럼 학생이 칠판에 내용을 써 내려간 것처럼 된다.
그래서 최첨단 MIT AI 연구소 소장인 그는 대학 수업에서 디지털 매체보다 중요하게 칠판에 판서를 병행했다.
故 패트릭 헨리 윈스턴 (Patrick Henry Winston) 교수의 MIT 수업 모습 - 유투브 발췌
故 패트릭 헨리 윈스턴 교수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 심리학자, 신경생물학자, 교육학자, 뇌과학자들의 많은 연구가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디지털 미디어로 정보를 입력받을 때와 종이책이나 문서를 읽을 때는 아주 다른 형태의 뇌 활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세상에 들어갈 때 우리의 뇌는 겉핥기식 읽기, 허둥지둥하고 산만해서 집중 혹은 몰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피상적인 학습 환경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학습이 일어나는 ‘뇌’에 대한 연구가 방대해지면서, ‘뇌에서 학습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것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손상당한 뇌는 회복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뇌가소성(brain plasticity) 연구가 발전 함으로써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스마트’ 시대, 우리가 더 똑똑해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 IT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는 디지털 기기에 종속된 이후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설명하고 있다.
황농문 교수의 책<몰입>, 교육과 몰입 부분에 그가 말한 ‘오래 생각하면 결국에는 풀린다’라는 말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즉 학습의 효과는 ‘디지털’, 혹은 ‘디지털 AI’ 가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학습자가 자신의 뇌를 어떻게,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하게 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교육부는 그리고 교육부 장관은 ‘종이’보다 ‘디지털’이라는 미디어 약장사를 하면 안 된다. 그는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 어떤 부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학습동기와 학습성취가 일어나는지 전문가들과 과학자들과 같이 고민해야 하는 자이다.
2023년 우리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성인을 기준으로 97%라고 한국갤럽조사에 나타났다. 더욱이 스마트폰 사용률이 90%대에 접어드는 시기는 저연령화되고 있다. 10대는 100% 사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교육의 디지털 환경을 가속하는 것이 바른 방향인지 고민해야 한다.
거대 인터넷 기업들은 ‘기기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화하도록’ 프로그래밍하며 우리의 사고와 선택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다. 인터넷이 우리 뇌의 구조를 바꾸고 깊이 사고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와 지금의 디지털 환경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가 자녀들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역설적인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요한 하리의 글로 끝맺는다.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사람이 장기간에 걸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진짜 문제를 파악해 공상과 구분하고, 해결책을 떠올리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만큼 긴 시간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민의 능력을 요구한다. 그러한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온전히 기능하는 사회를 만들 능력을 잃게 된다. <중략>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한 권위주의적 해결책에 쉽게 이끌리고, 그러한 해결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