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하이트의 <불안 세대>를 읽고
조나단 하이트의 <불안 세대>는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Z세대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스마트폰으로부터 아동기를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대책을 제안하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기게 한 구절이 있었는데 ‘Z세대가 대학교 캠퍼스에 도착하자마자 상담센터들이 분주해졌고, 2010년에는 아무 논란도 없던 책이나 발언이 2015년에는 유해하고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라는 부분이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 이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사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친구들끼리의 다툼도 학폭 문제가 되고, 회사에서 상사의 지적도 사내 폭력이 되고 있다. 이건 Z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대에 걸쳐 사회 전체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실제로 고통에 대한 역치가 낮아진 것 — 작은 마찰도 견디지 못하는 취약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진보다 — 예전엔 그냥 참아야 했던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권위에 의한 억압이 이제 이름을 얻고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문제는 이 두 가지가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다. "나 상처받았어"가 진짜 구조적 폭력을 당한 사람의 말일 수도 있고, 정상적인 마찰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말일 수도 있는데 — 외부에서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핀커가 Better Angels에서 보여줬듯이, 폭력은 지속적으로 줄었다. 사람들은 더 친절해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실제 세상이 객관적으로 더 안전해졌는데, 사람들은 더 불안해하고 더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고 느낀다. 왜일까?
미디어가 세상의 나쁜 일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니까 뇌의 위협 탐지 시스템이 과부하 상태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아도 큐레이션된 폭력에 노출된다.
또 다른 이유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폭력의 범위를 넓혀왔기 때문이다. 체벌이 교육이던 시대에서 아동학대가 된 시대로, 아내를 때리는 게 가정사이던 시대에서 범죄가 된 시대로. 이 방향 자체는 올바르다.
그런데 삶이 안전해질수록 고통에 대한 기준선이 내려간다. 배고픔을 경험한 세대에게 굶는 것은 불행이고,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에게는 원하는 음식이 없는 것도 불행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폭력도 마찬가지다. 폭력이라고 규정하는 기준선이 점점 내려간다.
심리학자 닉 하슬람은 이를 'Concept Creep'이라 불렀다.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물리적 폭력이 줄어들수록, '피해'나 '폭력'으로 규정하는 범위를 점점 넓힌다는 것. 과거에는 물리적 타격이나 직접적인 욕설만 폭력이었다면, 현재는 무시하는 눈빛, 불쾌한 농담, 심지어 내 가치관과 다른 발언(Microaggression)까지 정신적 폭력의 범주에 들어온다.
사회학자 브래들리 캠벨은 현대 사회가 '명예 문화'나 '위엄 문화'에서 '피해자 중심 문화'로 이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명예 문화는 모욕에 직접 맞서 싸우는 것이 미덕인 사회다. 위엄 문화는 작은 도발은 무시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것을 강함으로 보는 사회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피해자 중심 문화에서는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공개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사회적 지지와 자원을 얻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시련을 견디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피해를 드러내는 것이 전략이 되는 사회. 이것이 Z세대뿐 아니라 전 세대에서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만드는 동력이라는 것이다.
캠벨은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역 공동체의 실종을 꼽는다. 예전엔 동네에서 갈등이 생기면 공동체 안에서 해결했는데, 이제는 해결해줄 공동체가 없으니 국가나 기관, 여론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 지위가 가장 높은 도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려는 유인이 커졌다고 분석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이 구조 위에 기름을 부었다.
예전에는 쉬웠다.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그 편을 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고 믿었고, 그 믿음에 의심을 품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헷갈릴 때가 있다.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고, 사소한 일들이 학폭이나 직장 내 폭력으로 고소·고발되는 일도 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일도 종종 보게 된다(이것조차 내 의견일 뿐). 이제 누군가 피해를 주장할 때 나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무조건 믿는 것도, 무조건 의심하는 것도 답이 아닌 것 같다. 그 판단 자체가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판단을 포기하는 것도 비겁한 것 같고. 이 불편한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것 —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