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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Feb 03. 2023

26. 제주에서의 마지막 집콕데이

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26) 혼자여도 둘이어도 좋아 (230203)

오늘은 모처럼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 그리고 혼자서 바삐 돌아다녔던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오늘 하루 정도는 집에서 쉬엄쉬엄 보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내일부터는 집 밖에서 식사를 하게 될 테니 하루동안 집에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대충 냉장고 파먹기라는 뜻) 푹 쉬기로 했다. 무엇보다 혼자만의 여행은 실질적으로 오늘이 마지막이니 내 나름의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독립심이 강했다. 워낙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이 있었기 때문일까. 부모님은 동생을 봐주셔야 하니까, 그리고 바쁘시니까 무엇이든 나 혼자 알아서 해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혼자 무언가를 알아보고, 도전하고, 이루든 이루지 못했든 그 안에서 배워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사람들은 혼자 여행을 하면 심심하고 외롭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나에겐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다. 완전히 낯선 여행지에 떨어져서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도전과 성취이자 배움의 연속이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혼자 여행 중엔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그만이고 자고 싶을 때 자면 그만이다. 일행의 눈치나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당장 눈 떴을 때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겼다면 발 빠르게 행선지를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 좋았다. 결국 나는 자유를 좋아하고, 혼자 여행을 할 때에 그 자유를 온몸으로 누릴 수 있었으니 그 점이 가장 좋았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담뿍 누리며 한 달 장기여행을 세 번 다녀왔다. 세 번째 여행의 끝자락에서 깨닫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꼭 혼자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니 혼자가 아닌 둘이 되었을 때의 다양한 상호작용들이 나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 혼자 바다를 보는 것도 좋지만 나의 바다와 당신의 바다는 분명 다를 테니 어떤 걸 느꼈는지 서로 나누면 각자의 시야가 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먹는 문제도 상당히 간단해진다. 혼자 다니면 외식할 때 1인분 주문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그럴 걱정도 덜 수 있는 데다가 다양한 요리를 나눠 먹을 수 있으니 입이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안전 문제도 일정 부분에선 해결된다. 여행지에선 혼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는데 (성별과 관계없이) 둘이라면 확실히 안심되는 부분이 있다.


하나보다 못한 둘이라면 그건 여행과 상관없이 정리해야 하는 관계가 맞다. 그러나 둘이 만났을 때 둘 이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건강한 관계라면 같이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각자의 세계를 키워가고 서로의 세계를 키워줄 수 있는 데엔 여행만 한 것이 없다. 앞으로도 분명 혼자 여행을 떠나는 순간이 있겠지만 이제부터는 더 이상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을 밀어내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곳, 예쁜 곳을 함께 보고 많이 나눠야지. 당장 내일부터 시작될 둘의 시간을 오롯이 행복과 성장으로 가득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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