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상위 1%에서 남색 청소노동자가 된 우울.

초단편소설 #03화.

by 정현재Jeonghyunjea

3화 | 왕년에 상위 1%에서 남색 청소노동자가 된 우울


한국 나이 33살인 우울희는 청소노동자다. 어쩌다 젊은 나이에 울희는 청소노동자가 되었을까?


고등학생 때 울희의 성적은 상위 1%. 그 덕에 미래에 못할 게 없다고 자만했던 학생이었다. 대학생 때 처음으로 성차별을 경험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한 화이트 칼라직에서 온갖 미친놈들이 일하러 모인 곳이 회사라고 생각할 정도로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도 자신 역시 그렇게 보일 거라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그 덕에 공황장애 비슷한 것을 경험하고, 이후로 퇴사와 취업을 반복한 화이트칼라 직을 떠나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프리랜서는 사람과 대면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단점은 그걸로는 생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하게 되었고, 그렇게 점점 ‘돈’ 때문에 이 알바, 저 알바를 뛰다가 블루칼라 일로 직업군이 바뀌게 된 것이다.


아르바이트와 직업 사이의 애매한 태도를 지닌 울희는 일단, 최저 시급보다 높은 일을 찾았고, 운 좋게 면접에 붙어 하게 된 일이 바로, 학원 청소 일. 그렇게 울희는 청소노동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울희의 부모님은 울희가 학원 청소일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 아파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 중 최하위군에 속하는 일이 청소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희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저시급보다 높은 일에 찬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부모님의 찢어진 가슴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찢어진 살은 언젠간 자가 치료가 되기 때문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요일을 보내고 월요일이 됐다. 울희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점프수트를 입고 출근을 했다.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울희에게 역으로 말이 거의 없고 단순한 청소 일만 반복해서 영상에 보여지는 <퍼펙트 데이즈>의 잔잔함이 자극에 예민한 울희의 취향에 잘 맞았다. 특히 영화가 주는 ‘어떤 날은 행복하고 어떤 날은 슬프지만 그런데도 반복해서 살아간다’는 건조하지만 그 안에 씩씩한 분위기가 묻어난 메시지가 울희에게 필요했다.

이름 따라 인생간다고 우울희라는 이름 답게 울희는 자주 우울감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희는 우울함을 피하기 위해 매일 이 영화를 기도하듯, 하루의 의식을 치르듯 생각 없이 틀어놓고 보았다. 울희가 수 십년간 우울감을 느끼며 깨달은 것은 우울감 혹은 우울함은 정면으로 맞서 이기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우회해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전날도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자신의 인생을 투영하며 보며 잠들었고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캐릭터가 그려진 시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어두운 남색 점프수트를 입고 출근을 했다.


고용주인 학원 부원장의 요청사항에 따라 울희는 바닥 지우개 가루부터 쓸었다. 울희는 40평이 넘는 학원의 1~2층을 허리 숙여, 손잡이 높이가 낮은 빗자루로 쓸기에는 허리건강에 좋지 않다고 판단 했다. 그래서 주변사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학원에서 쓸 청소기를 구매했다. 대략 20만원 정도 됐다. 하루 일급보다 훨씬 비쌌고, 아직 받지도 않은 월급의 절반가 정도 됐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보면 허리건강에도 나쁘지 않고 멋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조용히 입다물고 어제 낮에 배송온 청소기를 들고 출근을 했다.

울희는 고용주의 요청사항에 따라 교실 책상과 바닥에 누군가 치워줄 테니 굳이 자신이 쓰고 생긴 지우개가루를 치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치우지 않는, 심지어 선생까지도 바닥에 분필을 떨어뜨렸음에도 줍지 않고 그대로 두는 악의는 없지만 고의가 다분한 지저분한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 고용주는 자신의 피 같은 돈을 주고 고용한 노동자가 잘 하고 있는 지, 돈을 날로 먹고 있는 건 아닌지, 돈을 준 것 이상으로 청소를 해내는 지 궁금하고 의심도 들기에, 울희가 퇴근 한 후 출근하여 책상과 벽 사이 틈과 같이 구석구석을 검사해 청소가 잘 되었는 지 검토한다. 이는 나쁜 행위가 아니다. 그냥 자신의 돈을 주고 누군가를 고용하면 누구나 자연스레 하게 되는 행위이다. 그래서 고용주와 노동자는 사이가 좋을 수 없다. 그런 고용주의 기준에 만족하지 못한 울희는 지적을 받은 전적이 있고, 그로인해 바닥 청소를 할 때 구석과 틈까지 전부 먼지와 지우개 가루를 치우고자, 의자 전부를 책상위에 올리고, 책상 하나씩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학생들이 쓰고 버린 바닥위의 지우개 가루를 청소기로 흡입했다.


그렇게 총 10개 정도 되는 교실과 탕비실, 프론트 2곳을 치워야 했다. 전전임자는 그렇게 청소를 잘 했다고 하는데…, 울희는 어떻게 3시간 안에 바닥을 다 쓸고, 탕비실과 프론트를 쓸고 닦고, 그 외에 남은 시간에 교실 물걸레질까지 했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한 층을 꼼꼼하게 쓸기만 해도 1시간 20분이 지나가 있기 때문이다. 그 후 탕비실 청소, 설거지, 바닥 청소하고 프론트 바닥 물걸레로 닦고 정수기 청소하면… 벌써 그것만으로 1시간 30분이 지나는데. 쉬지 않고 쓸기만 해도 3시간이 지난다. 물론 중간에 2시간 정도 지나면 한 번 화장실을 갔다 오긴 하지만…, 그게 일의 전체적인 지연을 줄 정도로 오래되지 않기에 배제하면 믿기지 않는 속도다. 울희 입장에서는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누군가는 해냈다고 한다. 그 말 역시 당사자가 아닌 고용주의 일방적인 말이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못할 것도 없을 거 같다. 요령만 익힌다면. 요령. 요령은…시간이 쌓이면 자연스레 생길까? 아니면 처음부터 있을 수 있는데 머리가 나빠서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일을 못한 걸까? 아니면 익숙해지는 과정인 걸까? 능력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아가씨라서 그런 걸까.


고용주는 그런 울희에게 “아가씨라서 그런가 요령이 없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울희는 그 말에 울컥했다. 요령이 없으면 없는 거지, 아가씨라서 없는 것은 또 뭔가. 그런데 한편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많을 수록 경험이 많으니까.


울희는 요령이 없어서 잘리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그래서 출근 보고 카톡도 더 정성스럽게 길게 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짧게 돌아오는 고용주의 카톡에 상처만 받고 우울해질 뿐이었다. 그래서 울희는 그냥 막나가기로 했다. 잘리면 잘리는 거고, 계속 하면 계속 하는 거고. 청소노동자 일을 하기 전에 재가요양보호사 일을 했다. 그때 기초수급자들이 사는 모습과 요양보호사에게 하는 갑질을 보며, 기초수급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난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디어가 공포를 더욱 조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오로지 전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의 최선이 누군가에겐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나는 대충했는데 누군가는 마음에 들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씁쓸하다. 울희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항상 ‘을’이었다. 대표님, 사장님, 기초수급자, 고용주가 ‘갑’. 그들의 기분을 살피며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울희는 오늘도 청소를 한다. 바닥에 진 얼룩을 지우며 ‘갑’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얼룩은 커피가 떨어진 자국인데…, 마치 모양만 보면 눈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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