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그대로 있어도 돼
1박 2일 여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국내에선 여행지로 엄청 끌리는 지역이 없는 편이어서 어딜 가든 기대치가 크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수는 최근에 간 국내 여행 중 가장 좋았습니다. 갈 때는 고속버스를 타고 올 때는 KTX를 타고 왔습니다. 오고가는 여정마저 지루하지 않게 잘 보냈다고 생각이 듭니다. 어디 휴게소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서 아쉽지만 휴게소에서 먹은 밤빵마저 맛있었습니다.
돌산 공원과 자산 공원을 잇는 해상 케이블카를 타면서 바라본 여수의 풍경은 마치 모나코를 연상시켰습니다. 바다의 일부분을 끼고 빙 둘러 있는 지형 지물들. 바다를 에워싸는 지형들의 등고선이 제법 높아, 아담한 바다가 어디를 가도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런 곳. 만 주변에 정박되어 둥둥 떠있는 온갖 선박들. 사람이 붐비지 않아 고요하지만 또 사람이 너무 없지도 않아 적당히 활기찬 곳. 제가 바라본 여수는 그랬습니다.
전라도 음식은 조금 짜긴 하지만 역시나 맛있습니다. 먹었던 것들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제겐 좀 짰지만 살이 가득하고 밥과 밑반찬의 양이 미쳤던 게장집. 토하젓이 특색있는 돼지갈비집. 유명하길래 찾아가 본 바게트 버거는, 기대 이하였지만 그래도 쑥 아이스크림이 그걸 만회했습니다. 여행의 끝을 기록한 것은 문어를 비롯한 해물이 정말 푸짐하게 들어있는 돌문어 라면입니다. 문어집에서 일몰을 바라보는데 그렇게 빠알간 해는 살면서 처음 본 것 같습니다.
호텔도 적당한 가격에 깔끔한 시설과 오션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케이블카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는 것으로 탔는데 에메랄드 빛의 바다가 발 밑에 있는 경험이 신선했습니다. 또 여수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역시 여행지를 가면 꼭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나 봅니다.
저는 특히나 고소동 벽화마을 쪽이 좋았습니다. 높은 지형 위에 카페며 주택이며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데 모든 곳이 오션뷰더라고요. 특히 한신 아파트는 동 마다 위치해 있는 높이가 다릅니다. 마치 모든 좌석에서 무대가 보일 수 있도록 만든 오페라 극장 좌석 같달까요? 그런 아파트에서 사는 느낌은 어떨지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지나가는 주민 분께 초대를 부탁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1일 여행자가 바라본 여수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하기는 힘든 걸까요? 동네 곳곳에는 여행자들이 주거지에서 너무 시끄럽게 해서 생기는 문제들에 관한 현수막이 붙어있었습니다. 택시를 타니 라디오에서 길거리 포차의 존폐 이전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더라고요. 여행자 입장에선 그곳이 주거지이기에 고즈넉하게 여행을 즐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거주자 입장에선 주거지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의 소란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갔던 돌문어집에 이런 글이 붙어있었습니다. "여수를 먹여살린 장범준. 장범준이 가게 방문시 모든 테이블 무료!" 가수 장범준의 노래 '여수 밤바다' 덕분에 여수가 관광 수입이 크게 늘었다죠? 거기에 여수 엑스포 유치로 케이블카 등 여러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다 보니 여수 관광객이 예전보다 꽤 늘었습니다. 정부가 주도했던, 어떤 문화적 붐이 일었던, 제 바람은 여수가 관광객들로 인해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길 바라는 것 입니다. 몇 년 뒤에 가도 다른 관광지와 다를 바 없는 상업화된 여수가 아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