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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Oct 28. 2020

항상 하는 근원적인 생각 : 무얼 하며 먹고살아야 할까

질리지 않는 일일 것. 그리고 동사일 것.

...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 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이십 대 후반인 나는 아직도 진로를 고민한다. 나라는 개별적 존재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대와 30대가 청소년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요즘. 무엇을 먹고살지, 내가 이번 생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마 숨이 다하기 전까지 갖고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비슷한 것들 같으면서도 종잡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 교사, 정책가, 방송 기자, 신문 기자, 잡지 기자, 회계사. 교사는 내가 누굴 가르칠 성정이 못 되어 일찌감치 포기했고, 정책가는 무언가 다소 추상적이라 로드맵을 찾지 못해 금방 잊어버렸다. 기자는 가장 오래된 꿈이었고, 그쪽 분야에 간접적으로도 몸을 담아 봤지만, 그 결과 나와는 맞지 않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회계사는 언급조차 하기 싫다.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듣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일제강점기에 판사의 지위를 내던지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독립운동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독립운동가는 판사라는 '명사'가 꿈이 아니었다. 정의를 통해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는 '동사'가 그의 꿈이었다는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그렇다. 내 꿈은 여태껏 명사에 지나지 않았다.


명사는 많은 것들을 생략해버린다. 어떠한 직업의 이름을 떠올리면 우리는 그 직업이 하는 구체적인 일들, 그 직업을 통해 얻는 보람이나 성취감, 그 직업이 개인과 사회에 공헌하는 바는 뒷전이 된다. 그저 연봉, 지속 가능 연수, 사회적 명망 등 단순히 떠올리기 쉬운 부수적인 것들이 직업의 포장지가 되고 껍데기가 되어버린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했던 일은 글쓰기, 사진 찍기 같이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독서나 예술 작품 감상과 같이 소비하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내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공부를 통해 소위 '사'자 직업을 가지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세뇌받고 세뇌하며 살아왔다.


나는 '사'자 직업을 갖는 데에 실패했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장래희망을 찾아 헤맨다. 내가 좋아했던 뮤지션이자 라디오 디제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은 음악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음악을 한다고. 내게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일들이 있을까?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이 말했던 것처럼 뛰어나게 잘하진 못해도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일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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