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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Nov 29. 2020

부모님에게도 공주와 왕자가 될 권리가 있다.

부모님 리마인드 웨딩 촬영기

몇 년 전부터 가족사진을 찍자, 찍자는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유가 안 되고 상황이 안 돼서 미뤄왔다. 그런데 최근에 드디어 아빠께서 결심이 섰는지 어서 나에게 날짜를 잡아보라고 재촉했고, 그런 아빠의 재촉에 다소 귀찮아진 나는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 3분 만에 아빠께 보고를 올렸다. 아빠는 당장 오늘 사진을 찍자고 했다.


퇴근 후 지친 데에다가 머리도 안 감고 화장도 안 한 썩 좋지 못한 몰골을 한 채로 평생 박제가 될 사진을 찍으려니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어쩌랴. 이미 아빠의 결심은 되돌리기 힘들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어둑어둑한 저녁 사진관으로 향했다. 사진관에서 사진 찍는 게 생각해보면 오랜만인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사진, 대학교 때 친구들과 우정 사진, 각종 증명사진과 취업용 사진을 찍은 것 정도. 내가 가봤던 사진관 중에는 제일 컸다. 옷도 사이즈 별로 구비되어 있었고 나름 이 지역에서는 유명한 곳 같았다.


사진작가님께서 꽤나 영업에 열의를 다 하셨다. 우리 가족 구성원 네 명을 모두 앉혀놓고 일련의 과정들을 장황하게 설명해주셨고, 중간중간 유머를 섞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말이 많은 편은 우리 엄마뿐인데, 엄마만이 유치원 어린아이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피곤도 하겠다 어떻게 되든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샘플 사진들을 보여주는데, 리마인드 웨딩 촬영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실 부모님께서 결혼 30주년이신데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을까도 고민하셨지만 그런 일들은 다소 유난스럽게 느껴졌던 부모님은 소박한 가족사진을 찍길 원하셨다. 그런데 막상 화려한 드레스와 멀끔한 턱시도를 입고 찍은 사진을 보니 내가 다 탐이 나는 것이다. (사실 드레스를 입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 셋은 모두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자고 했으나 엄마는 본인이 살쪄서 절대 안 된다며 계속 한사코 거부하셨다. 그렇지만 역시나 결과적으로 아빠의 권유에 넘어가고 말았다.


우리 모두 사진 찍는 데는 젬병이라 촬영이 걱정되었지만, 작가님께서 워낙 전문가 인터라 자세나 표정 이런 것들은 예상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만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 붙어 본 적이 없는 우리 남매는 어색함을 참은 채 서로가 아예 남이라고 생각하고 사진 찍는데 임해야 했다.


흰 셔츠와 청바지로 통일한 캐주얼 차림의 촬영이 끝난 후 드디어 드레스와 턱시도 타임이 돌아왔다. 우선 빠른 속도로 나의 드레스를 고른 후 엄마가 드레스를 입을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드레스를 입고  면사포에 티아라, 귀걸이를 한 엄마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항상 본인이 뚱뚱하다며 칙칙한 톤의 옷만 입던 엄마가 이렇게 어깨를 드러내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으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보다, 엄마 본연의 아름다움이 더욱더 빛난다는 표현이 적확했다.


마치 30년 전 결혼식 때처럼 짜잔 하고 아빠 앞에 등장했을 때, 평소보다 더욱 빛나는 엄마의 눈동자를 본 아빠는 감탄을 자아내셨다. 엄마의 검은 단발머리는 새초롬하게 귀 옆에 붙어있고, 어깨선은 수줍은 듯 우아하게 드러나고, 단출한 부케를 꼭 쥔 두 손, 서양화에서 볼 것만 같은 벨 모양의 풍성한 드레스 라인이 만드는 일련의 실루엣이 마치 디즈니 공주같이 귀엽고 예뻤다.


주인공은 엄마이긴 했지만 아빠에게서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양복 차림이야 많이 봐왔지만 아빠가 빨간 장미꽃을 들고 무릎을 꿇은 모습을 살면서 또 언제 보랴. 자식으로서, 살면서 부모님의 이런 찬란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진 촬영만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저녁도 먹지 못하고 간 우리 가족은 모두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사진 셀렉과 제작 상담이라는 한 고비가 더 남아있었고 결국 사진관에 입성한 지 세 시간 만에 그곳을 나갈 수 있었다. 애초에 예상했던 금액의 거의 열 배가 되는 비용이 들게 되어버렸지만, 우리 모두 행복한 기억을 선사받았다는 기분에 돈이 아깝게 느껴지진 않았다.


사실 아빠께서 건강이 좋지 않아 종종 입버릇처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식의 말씀을 하시곤 했다. 자식으로서 가슴 아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대답해드려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도 했다. 괜한 소리라며 아빠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아빠의 그 문장들은 우리 삶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아닌가? 우리 모두에게 시간은 유한하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그 속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기 위해 나아간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 현재를 사는지 과거를 사는지 미래를 사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우리 엄마가 남은 생을 공주로 살았으면 좋겠고, 아빠도 왕자로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그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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