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1. 프랑스로
프랑스 학생 비자는 마치 거대한 성벽 같았다. 비자를 내주지 않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와 거쳐야 하는 절차가 내겐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웬만한 것들은 막상 해보니 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것은 프랑스는 학생들에게 천만 원 이상이 든 은행 계좌를 요구한다는 점이었다. 내게 그만큼의 돈이 있을 리 만무했고 부모님께서도 누군가에게 빌려서 마련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마음의 짐이 잔뜩 쌓여버렸다.
학생 비자 접수 기관에서 접수자들을 모아 놓고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계단식 의자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담당자에게 인터뷰를 당해야 했다(심지어 영어 아니면 프랑스어로). 담당자는 학생들에게 프랑스 유학을 가는 이유, 프랑스에서 배우고 싶은 점을 물었다. 내가 프랑스를 가고 싶은 이유는 단순했다. 반 고흐, 사르트르, 개츠비가 활보했던 파리가 궁금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배경은 죄다 파리였다. 샤넬, 디올부터 생로랑, 지방시, 베트멍까지 유수의 디자이너들이 파리를 근거지로 자신의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판타지가 가득했기에 나는 교환학생 체류 국가로 프랑스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일말의 고민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남자 학생은 프랑스 상수도 시스템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어떤 여자 학생은 요리를 배우러 간다고 한다. 사실 내게 학문적 이유는 필요치 않았다. 내가 가진 환상을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그저 즐기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명색이 대학생으로서 이런 자리에서 망신을 당할 순 없지 않은가. 재빨리 머리를 굴려봤다. 전공은 경영학이다. 그렇다면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프랑스 예술 분야의 경영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어떤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지 배우고 싶다.’라고 해야지라고 머릿속으로 영어 작문을 완벽히 끝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차저차 모든 절차에 맞춰 준비를 완료했지만 안타깝게도 비자는 예상한 일자에 나오지 않았다. 비자가 나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내게 우리 아빠는 같이 대사관에 가서 해결해 보자고 호기롭게 말씀하셨다. 한 시간이 걸려 찾아간 충정로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결국 우리는 1분 만에 쫓기듯이 나왔다. 나중에 다시 오라는 말 이외엔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했다. 말대꾸 하나도 하지 못한 우리 아빠가 그렇게 작아 보이긴 내 생에 처음이었다.
원래 1월 초에 있는 내 생일을 프랑스에서 맞이하는 것이 계획된 일정이었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도 듣고, 내 절친한 친구와도 만나기로 했었다. 내 친구의 동생이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터라 내 친구도 그 해 겨울에 프랑스에 놀러 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자가 예상한 시점에 나오지 않아 결국 한국에서 생일을 맞았다. 집 사정이 안 좋아져 집을 이사한 시점이었다. 그토록 꿈꾸던 프랑스에 간다는 것은 설레는 일임에 분명했지만, 난 참으로 예민했고, 우울했다. 부모님께 소리를 지르며 신경질을 내는 일이 많았고, 오죽했으면 무뚝뚝한 동생이 부모님께 좀 잘하라고 내게 편지를 썼다.
혼자 외국을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는데 목적지인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떼제베를 놓쳐 어두운 밤 공항에서 미아 신세가 되는 꿈. 꿈이 어찌나 생생한지. 가보지도 않은 샤를 드골 공항의 어둠의 깊이와 차디찬 공기가 피부에 선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대게 현실은 막상 부딪히면 허무하리만치 별게 없다. 가족들과 헤어져 홀로 비행기에 탔을 땐 면세점에 서 산 캐논 50d를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팔렸고, 두 번의 기내식을 먹으며 비행기에서 사육당하고 나니 어느덧 파리에 도착했다. 날은 다소 어둑했고 양손에 캐리어와 어깨에 배낭, 허리엔 힙색이 있는 그런 행색이었지만, 무사히 떼제베에 올라탈 수 있었다.
*위 시리즈는 2014년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프랑스 교환학생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