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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학에서 한국인 친구를 사귀지 마라?

[프랑스 교환학생기] 5. 배울 점이 많았던 한국인 친구들

by 정일홈

같은 대학 언니와는 친분이 아예 없는 사이도 아니었다. 같은 과 선배라 몇 번 스치며 인사도 하고 밥도 먹었다. 그런데 이렇게 타국까지 함께 오게 되니 왠지 각별한 느낌마저 들었다. 언니는 다행히도 기숙사를 잡았고, 나보다 1주 전에 이곳에 도착해있었다.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유하게 되는 정보도 있고, 무엇보다 외로움이나 고독함이 덜할 거라 생각했다. 반면 나는 늦게 도착해 오티도 놓치고,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이것저것 놓치고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꽤 컸었다.

나는 내가 스트라스부르에 오자마자 언니가 나를 불러 이곳 투어를 시켜준다든지, 자기가 얻은 정보들을 알려줄 줄 알았다. 하지만 한동안 우리는 사적으로는 만나지 않았고, 한국인들이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야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엔 서운했지만 지금 오니 언니도 정신없었겠거니 이해가 간다.

나와 그 언니를 빼고 나머지 6명은 A학교 또 나머지 1명은 B학교였다. 이렇게 9명은 스트라스부르에서의 한 학기를 함께하게 된다. 다수가 A학교에서 왔기 때문에 나머지는 다소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다들 성격이 좋아 그런 일은 없었다. 다 같이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러 가기도 하고, 마트도 함께 다녔다. 또 주변 도시로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아이스 스케이트 하니 다소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능숙한 편은 아니다.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러 간 날은 비교적 만난 지 얼마 안 된 때였고, 심지어 같은 학교 언니는 오지 않은 날이었다. 유난히 다른 사람들끼리는 친해 보였던 그날. 혼자서만 열심히 빙판 위에 발을 구르며 스케이트를 탔던 그런 슬픈 기억.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한 명과도 꽤 친해졌다. 한 명은 나의 클럽 메이트가 됐고, 또 다른 한 명은 서로 인스타 팔로우를 한 다음 정보 공유도 많이 하고 맛집 탐방을 함께 하기도 했다. 나머지 한 명은 회계 수업 메이트였다. 곱슬머리에 똘똘한 마이콜 같이 생겼던 이 오빠는 약간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숏컷을 하고 싶다 하니 자기는 숏컷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고, 시험공부를 같이 하자고 제안해서 내가 거절했더니 토라진 내색을 비쳤다. 아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한 번은 내가 자취하는 방에서 모여 콜라 찜닭을 해먹기도 했다. 홈파티의 주최자가 된 기분이었다. 개츠비처럼 화려하진 못해도 사람들이 오기 전에 방 안에 향수도 뿌려놓고, 테이블 세팅도 없는 살림에 있는 힘껏 해놓았다. 변기에 때가 그득한 화장실이었지만 되는 대로 물때도 닦아놨다. 혼자 지낼 때는 방이 그토록 춥더니 대여섯 명이 방에 들어오니 방 안에 훈기가 가득해졌다. 즐겁게 먹고 떠드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하지만 파티가 끝나고 우르르 친구들이 나가고 나니 밀려오는 허전함은 이전보다 더욱 심한 것 같았다.


해외 유학을 가면 한국인을 사귀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많은 않다고 생각한다. 한 명 한 명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서로 도움도 많이 주고받았다. 각자가 가진 개성은 아늑한 집을 벗어난 이곳 타지에서 더욱 빛이 났고 그 속에서 배운 점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의외로 흔들리지 않는 듬직함을 보여주던 한 오빠, 여러 면에서 능숙함을 보여줘 우리를 편안하게 해 줬던 언니. 어떤 친구는 교환학생에 와서도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편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야”와 같은 명언을 남긴 시원시원한 성격의 친구 덕에 있던 걱정과 두려움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낯선 곳에 오면 낯선 문화만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사람들, 사소한 일상까지도 새롭게 그리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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