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6. 학생 보험 들기
나는 학생 보험을 들어야 했다. 모든 행정 처리를 빨리 털어버리고 싶었던 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보험 회사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보험 회사는 전망 좋은 고층 빌딩에 있기 마련인데, 여긴 무조건 1층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교적 쾌적한 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대기 시간은 길다. 뭐든지 신속하게 처리되는 것이 우선인 우리나라에 비하면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한편으로는 급할게 뭐 있을까 싶다. 프랑스에선 기다리는 게 일상이다. 덕분에 멍 때리는 시간도 보장된다.
의사소통은 힘들었다. 직원도 나도 영어를 잘 못했다. 겨우겨우 번역기를 돌려 의사소통을 시도해보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뭔지 모르지만 해야 될 절차가 끝났다. 그런데 왠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보험료가 더 비쌌다.
나에게는 서비스직인 사람과 대면할 때, 상대가 불편한 감정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친절하고 신속하게 그 업무를 끝내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이는 서비스라는 재화를 구매하는 소비자 입장에선 바보 같은 짓임이 틀림없다. 특히 판매자와 구매자의 정보 비대칭성이 큰 보험 같은 분야에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 한다. 그건 판매자를 귀찮게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정당한 권리인 것이다.
어김없이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나온 나는 뒤늦게서야 인터넷에 보험에 관해 찾아본다. 나는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닫는다. 하나는 쓸데없이 제일 비싼 보험을 선택한 것이고, 둘은 1년 치 선불 보험료에서 유학 기간을 1년을 채우지 않을 시 환급을 해주는데 그 환급 금액을 받지 않은 것이다.(이것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인지를 한 것이다.) 절망감을 안은 나는 이튿날 다시 보험 회사를 찾아갔다.
다행히도 흔쾌히 보험을 다시 바꿔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보험을 바꾸는 이유를 자필로 써서 작성하라고 한다. 그곳에 앉아서 영어로 "내가 착각하여 보험을 바꾸길 원한다"는 요지의 글을 쓰고 있자니, 교무실에 와서 반성문을 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바로 돈을 환불해 주지 않는다. 수일 뒤에 집에 우편으로 도착할 거라 한다.
타국에서 살 때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행정 처리가 아닐까 싶다. 군말 없이 그 나라 법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엄청난 약자가 된 기분이다. 더군다나 처리 기간이 매우 느린 나라에선 나같이 급한 성격의 소유자에겐, 기다리는 기간 내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과도하게 위축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부분의 행정 기관에선 나를 온화하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별 거 아닌 일인데. 나 같은 유학생도 사회 안전망에 포함시켜주는 좋은 나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