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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마이너스 통장 개설하기?!

[프랑스 교환학생기] 7. 은행 계좌 열기, 폰 개통하기의 여정

by 정일홈

한국에서도 핸드폰을 개통한다든지, 통장을 개설하는 일은 영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한번 하라면 마음먹고 해야 하는 일이었고, 때로는 귀찮음을 넘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어쨌든 한국에서도 힘든 일을 프랑스에서 해야 한다니, 정말 마음의 큰 짐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BNP Paribas에서 통장을 개설했는데, 은행 운영시간은 8시부터 18시까지 지만,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는 점심시간인 점이 꽤 인상 깊었다. 한편 번호표를 뽑고 쾌적한 환경에서 대기했던 한국은행들과 달리, 스트라스부르 BNP는 조촐한 대기 라인에서 언제 올 지 모르는 직원을 마냥 서서 기다려야 했다. 직원이 드디어 나타나면 나는 대화를 할 기회가 비로소 생기는데, 통장 개설을 원한다고 해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날짜를 잡고 그 날 다시 와서 통장 개설을 해야 한다. 통장 개설하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지만, 나는 반박할 만한 능력이 없기에 약속 날짜를 잡고 재빨리 은행을 나선다. 오늘, 은행을 처음 다녀온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매우 대견하게 느껴진다.

며칠 뒤 내 통장을 개설해 줄 은행원을 드디어 만났다. 그는 금발 머리의 호탕한 남자 직원이었는데, 내 신상을 이것저것 물으면서 신나게 계좌를 개설해줬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처럼 계좌 수를 늘릴수록 성과가 인정되는 걸까? 이 프랑스 남자도 주변 지인들에게 통장 개설을 권유하고 다니는지 문득 궁금해졌지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는 내게 프랑스 체류를 얼마나 할 것인지 물었고, 나는 언제 돌아갈지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략 6개월이라고 답했다. 어쨌든 나는 당당하게 프랑스에서 은행 계좌라는 것을 개설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부모님께서 내게 국제 송금을 해주실 창구가 생겼다!

나는 현금이 부족할 때마다 낡디 낡은 프랑스 ATM기기에서 돈을 뽑아 쓸 수 있게 됐다. 신기하게도 프랑스 통장은 대부분 마이너스 통장이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돈을 갚지 않고 귀국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소심하기에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내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 조심했다. 나에게 경제적 활동을 가능하게 한 소중한 BNP Paribas 카드 덕에 유럽 어디를 가든, 심지어 한국에서도 BNP Paribas는 나에게 반가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핸드폰을 개통할 차례였다. 핸드폰을 먼저 개통하려고 처음엔 아무 통신사나 들어갔었는데 계좌가 있어야 해서 좌절했던 나는 계좌 개설 후 다시 핸드폰 개통에 도전한다.

프랑스에는 네 개의 주요 통신사가 있다. Orange, Bouygues, SFR, Free Mobile이다. 그중 내가 선택한 곳은 Free Mobile(이하 프리 모바일). 프리 모바일은 프랑스 통신사 중 '알뜰폰 통신사' 개념으로 통신 인프라가 약한 대신 저렴한 가격에 보다 용이한 개통 및 해지가 가능한 곳이었다. 그래서 결국 프리모바일로 택하게 되었고, 신청도 인터넷으로만 가능했다. 신청일로부터 수일 후에 우편으로 심카드를 보내준다. 요금제는 아마 제일 저렴한 것으로 했던 것 같다.

프리모바일로 나의 스마트폰 생활을 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유난히 안 터진다든지 하는 일도 없었고, 다른 블로그 글을 보니 스트라스부르에 프리모바일 송전탑이 있어서 잘 터진다는 내용도 있더라. 어쨌든 만족스러웠다.

사실 프랑스에 긴 기간 거주하지 않을 거라면 개통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 내 한국인 친구가 그랬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카카오톡으로 전화와 영상 통화도 무리 없이 되기 때문. 단 프랑스인과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아야 한다면 당연 필요할 것이다. 나는 교환학생 기간 동안 전화 한 번(그것도 한국인 친구와), 문자 세 번 정도 했으려나 싶다. 번호가 있으면 좋은 점은, 번호를 무조건 입력해야 하는 행정 처리에서 편하다는 점 정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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