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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인 스트라스부르

[프랑스 교환학생기] 9. 프랑스어 수업에서 생긴 일

by 정일홈

나는 원래 프랑스어를 좋아했기에 프랑스어 관련 교양 수업을 이미 한국 대학에서도 수강했고, 교환학생에 오기 전 '알리앙스 프랑세즈(프랑스가 설립한 세계 각국에 있는 프랑스어 교육 사설 기관)'에서 프랑스어 기초 수업을 들었다. 이 연장선에서 프랑스에 가서도 프랑스어 수업을 신청하게 된다.


이 수업은 어쩌면 자의였든 타의였든 간에, 내가 가장 열심히 참여한 수업이다. 언어 수업의 특성상 계속 말하고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기초 수업일 수록 입을 벌릴 일이 많다. 또 저번에 만났던 중국인 친구들도 프랑스어 클래스 메이트였다. 내가 교수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면 그들이 다시 내게 친절히 알려주곤 했다. 어쨌든 수업 시간 내내 정신줄을 잡고 있지 않으면 창피를 당할 게 뻔해서 항상 긴장되는 시간이었고, 쪽지 시험도 자주 봤기 때문에 공부도 열심했다. 그래도 프랑스어를 좋아해서 내겐 즐거운 배움의 시간이었다.


참고로 수업에는 동양인은 두 명뿐이고 다수가 서양인이었다. (사실 그 수업뿐 아니라 그 학교 자체가 그랬다.) 교수님께서 '캐나다 도시 이름 말하기'라는 뜬금없는 퀴즈를 내고 돌아가면서 답하기를 할 땐, 마치 술 게임 자리에서 지하철 이름 대기를 하는데 나는 한 번도 이용해본 적 없는 '분당선' 이름 대기 같은 상황에 직면한 기분이었다. 다른 서양인 친구들은 잘만 대답하는데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려 역사책인가 뉴스인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몬트리올’ 찾아냈다. 사실 캐나다의 수도가 '오타와'인 것도 교환학생 시절에 처음 알았더랬다.


한편 그 프랑스어 수업에는 미국인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글의 구성을 위해 그녀를 에밀리라 칭하겠다. 에밀리는 금발 머리에 덩치가 조금 있고 민소매 옷을 즐겨 입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프랑스어 수업이 적성에 안 맞았는지 수업 중간에 교실을 나가기도 하고, 결석도 자주 했다.


그녀의 행동은 갈수록 나에게 '컬처 쇼크'로 다가왔다. 그녀는 수업 시간에 항상 삐딱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것만으로도, 선생님에게 심하게 혼나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항상 그 미국인 친구를 보며 내 마음이 다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어 교수님은 그녀의 태도를 지적했다.


에밀리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제가 허리가 아파서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럼 병원에 가야지 어떻게 여기 있니"


"그럼 병원 보내주세요. 지금 갈게요."


그녀에게선 교수를 전혀 '윗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진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친구의 개인적 성격이겠지만, 미국은 교권이 낮은 걸로 유명하다.


한편 미국 친구의 옷차림을 보았을 때도 그렇고, 여기서 본 서구권 학생들의 옷차림도 매우 자유롭다. 민소매, 짧은 바지 그리고 노브라는 아주 일상적인 수준이다. 나는 대학교가 내가 겪어본 집단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하는 집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교에서는 '학교'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의 선이 있었고, 이를 넘어서면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본 학생들은 더우면 더운 대로 벗고 추우면 추운 대로 마구 껴입는다. 대신 파티나 클럽 갈 때는 힘을 줘서 꾸며도, 학교나 일상생활에선 아무거나 걸치자는 주의의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가 학굔지 방구석인지 구분이 안 갈 때도 많았다. 한국 대학교에 훨씬 멋쟁이들이 많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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