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10. 독일 포르츠하임
나는 독일 포르츠하임에 교환학생으로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스트라스부르에선 기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도시 면적은 서울의 1/6이 안 되며, 인구는 12만 명 정도다. 친구 말에 따르면 포르츠하임에 있는 대학교가 자동차 디자인 쪽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도시 자체는 볼 것이 없다고 했다.
기차를 타고 달리는 데 독일 기차라 그런지 더 깨끗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방송으로 나오는 독일어가 칼에 베인 듯이 날카롭다. 독일로 넘어가는 도중이었으니 인터넷이 되지 않아 핸드폰을 할 수 없어 멍하니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그것도 질리면 저장해놓은 핸드폰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때웠다. 포르츠하임에 도착했을 때 받은 인상은 황량하다는 느낌이었다. 도시가 전혀 특색이 없었고 건물도 옛 양식을 따른 것이 없었다. 불과 프랑스에서 두 시간 걸려 왔을 뿐인데 도시든, 사람이든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도시는 훨씬 직선적이었고, 쇼윈도에 전시된 옷들은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투박한 디자인이었다. 터키계 사람들이 많이 보였고, 케밥집이 아주 많았다. 사람들의 꾸밈새도 기능성에 100% 초점을 맞춘 듯, 미에 대한 추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문제가 생겼다.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와 연락이 안 된다.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친구가 오지 않았다. 역사에는 딱히 기다릴 만한 곳이 없었다. 날이 추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인터넷방이라고 써진 곳에 가봐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와이파이는 어디에서도 터지지 않았다. 맥도널드에 가서 우선 감자튀김이라도 사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는 1시간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았다.
한계에 다다른 나는 결국 맥도널드에서 가장 착해 보이는 사람을 골라 핸드폰을 빌릴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항상 우연은 거짓말처럼 찾아온다. 그 독일인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이다. 물론 유창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한국과 어찌하여 연이 있는 친구였다. 그녀는 흔쾌히 내게 핸드폰을 빌려줬고, 나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친구에게 연락해 겨우 친구를 불러낼 수 있었다.
친구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었다고 했고, 추위에 떨던 나는 날이 어둑해져서야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화장실이 조금 가고 싶어 졌다. 귀찮기도 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친구가 화장실 어디인지 대신 물어봐주겠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못 물어본다고 생각하는 건가. 상대방이 호의를 보여도 내가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으면 호의도 비수가 되어버린다.
어쨌든 친구는 나를 픽업해 본인 대학교의 기숙사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교환학생 중인 한국인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었다. 다들 한 기숙사에 살아 꽤나 친해 보였다. (우리는 기숙사도 2-3개로 나뉘어 있었다.) 같이 요리를 해 먹는데 누가 요리 담당이고, 누가 청소 담당인지 등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친구의 기숙사 방은 꽤나 컸다. 두 명이서 같이 사용하고 있었고,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이제 곧 떠날 날이 다가온 친구에게 주방 식기구 등을 얻을 수 있었다. 캐리어 가득 중고 물품들을 넣으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유학생들에겐 이런 나눔이 아주 소중하다. 친구가 클럽을 가자고 제안했다. 이 친구는 한국인들끼리 클럽을 자주 갔는데 심지어 포르츠하임에서도 꽤나 떨어진 도시까지 클럽을 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클럽을 다녀온 후 우리는 밤새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프랑스에서 조금 살았다고, 독일에서의 첫날밤이 낯설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