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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아웃핏은 칙칙해도 커리부어스트와 칸트가 있었다

[프랑스 교환학생기] 11. 하이델베르크 성

by 정일홈

우리는 하이델베르크에 가기로 했다. 하이델베르크는 하이델베르크 성을 보기 위해 한국인들이 꽤나 찾는 곳이다. 하이델베르크는 포르츠하임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 걸렸다. 면적은 포르츠하임보다 조금 넓고 인구는 조금 많은 수준이라고 한다. 비가 시나브로 내리는 우중충하고 추운 날씨였다. 하이델베르크는 포르츠하임보다는 큰 도시여서 상권이 더 발달하고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다. 다시금 느끼지만 독일 사람들의 패션은 칙칙하기 그지없었다. 프랑스에 있다가 온 나는 이점이 꽤나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스트라스부르도 대도시는 아닌데 사람들의 패션은 아주 수려했다. 며칠 전 스트라스부르 트램에서 봤던 어떤 여자는 올 블랙에 골드 액세서리로만 포인트를 준 멋들어진 스타일을 하고 있어서 감탄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이에 비해 하이델베르크 트램에선 다들 개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무채색의 외투만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독일 사람들 구경에 심취하며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향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진입하기 위한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져 있었다. 꽤나 세련된 상점들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커리부어스트라는 것을 사 먹었다. 소시지와 프렌치프라이, 그 위에 커리 가루를 뿌린 음식이었다. 반지르르한 표면의 소시지를 앙 물면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육즙이 터져 나온다. 커리향이 더해지니 소시지 비린내도 사라지고 풍미가 훨씬 좋다. 비 내리는 추운 날 커리부어스트를 호호 불어가며 먹으니 뱃속이 그렇게 따땃해질 수 없었다.


배를 채운 후 성을 구경하는데, 성 방문을 앞둔 사람이라면 반드시 운동화를 신고, 컨디션이 좋은 날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성 특성상 산 중턱에 위치한 데다, 계단이나 경사가 높은 길이 아주 많다. 날이 흐릿해서 그런지 적색 벽돌로 만들어진 성의 벽면이 모두 무거운 갈색으로 변해있었고, 분위기도 아주 쓸쓸했다. 그렇게 친구와 소담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하이델베르크 성의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간 후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전경을 감상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선 '철학자의 길'이라 불리는 곳 일대를 감상하는 것이 필수 코스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항상 점심시간 때면 철학자의 길에 있는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다리 위로 칸트의 모습이 보이면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칸트가 존경스럽긴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갔다고 하니 셔츠를 목 끝까지 잠근 상사를 만난 것 같이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철학자의 길이라 그런지,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런지, 전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여러 상념이 찾아든다. 비 오는 추운 날씨, 산책, 탁 트인 강변. 이 조건이 갖춰진다면 누구든 철학자가 되지 않으랴. 하이델베르크 대학도 독일 내 1위 대학, 유럽 내 7위 대학이라고 한다. 이 동네 친구들이 공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날 찍은 사진을 보니 채도가 너무 우중충해 내 얼굴빛도 덩달아 안 좋아 보인다. 마치 폐허에 온 것 같기도 했다. 관광객만이 찾는 버려진 성. 각종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성. 과거의 이야기만을 간직한 채 고고히 존재해가는 하이델베르크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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