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12. 봄 방학 여행 준비
프랑스 땅에 떨어져 적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2월 말부터 3월 초에 2주가량의 봄 방학이 주어졌다. 난 방학의 존재도 몰랐고, 유럽으로 막연히 '교환학생을 가면 유럽 여행 많이 다니겠지'라고 생각만 한 정도였다. 그런데 다른 한국 친구들은 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여행 계획을 다 세워놓은 듯했다. 다들 모인 자리에서 여행 이야기를 꺼내는데,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던 나는 이렇게 잠자코 있다간 방학을 그냥 흘려보내 버리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지금의 나라면, 그리고 한국에서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면, 몇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쳤을 것이다. 나라 선정부터, 어디를 갈지, 뭘 볼지, 뭘 할지, 뭘 먹을지. 그때부터 여행 계획 노동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유럽 같이 먼 나라 여행은 처음이었고, 혼자 하는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뭘 모를 때가 용감한 거라고 했나. 여행지는 단숨에 정해졌다. 내가 제일 가보고 싶었던 나라 프랑스의 수도 '파리', 그리고 파리랑 가까운, 그렇지만 가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국의 수도 '런던'이었다.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아니면 민박. 몇 번간의 여행 경험으로 인해, 지금은 게하나 민박은 내 스타일이 아님을 이제는 깨달았지만, 그때는 무조건 가격이 싼 곳을 가야 했다. 그다음은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 그런데 사실 그것도 정하지 않았다. 파리와 런던이라는 도시는 내가 할 만한 게 넘쳐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런던은 세 가지였다. 런던에 있는 두 명의 다른 친구들을 각각 만나고,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는 것. 그것 외엔 크게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단순해서 더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여행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건 아무래도 좋지 못한 방향 같다. 다만 꼭 가자고 계획했던 것은 '파리 패션위크'였다. 그때 당시 나는 스트릿 포토에 미쳐있었다. 화려하고 세련되면서도 때로는 기이하고 해학적인 '패션 피플'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가감 없이 찍힌 스트릿 포토. 특히 남현범 작가님의 광팬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강의 밑그림만 그려놓고 스트라스부르 역에서 파리 북부역으로 가는 떼제베에 올라탄다. 샤를 드골 공항을 한 번 거쳤다고 나름 친근하다. 파리 북부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을 갈 것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열차라! 4면이 막혀있는 우리나라에서 기차로 다른 나라를 가다는 건 언제나 신기하고 설레는 일이다. 무작정 떠난 런던.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