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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May 16. 2021

혼자서 해리포터 스튜디오 가기

 [프랑스 교환학생기] 19. 런던 여섯째 날

유난히 두근거리는 아침. 간밤에 친구와 수다를 떤 탓에 잠도 몇 시간 못 자 머리가 몽롱하니 현실 감각이 없이 붕 떠있는 기분이다. 오늘은 홀로 기차를 타고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는 날이다. Watford역에서 내리는 열차를 타야 하는데 런던 기차역이 크고 복잡해 한참을 헤맸다. 결국 직원에게 이 기차가 맞는지 물어야 했다. 나는 기차 시간 전까지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 구경만큼 재밌는 게 또 있을까?

 

기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런던의 지하철은 Tube라고 불리는데 우선 매우 환기가 안 된다. 공기 질이 매우 나빠 튜브 한번 타고 나오면 콧물이 까맣게 나온다는 친구의 증언도 있었다. 또 열차 크기가 매우 작아 출퇴근 시간에는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다. 반면 왓포드로 가는 기차는 쾌적한 편이었는데, 우리나라 기차 좌석처럼 진행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처럼 기차 양 벽면에 좌석이 붙어 있는 구조였다. 우리의 공항철도쯤 되는 걸까?

 

왓포드 역에 내리면 버스를 타고 한번 더 들어간다. 참고로 해리포터 스튜디오 티켓 예매는 꽤 미리 했던 걸로 기억한다. 드디어 스튜디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진난만해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입구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신나 한다. 나는 혼자인 데다, 컨디션도 좋지 않아, '오...'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는 정도에 그친다.

 

런던의 해리포터 스튜디오는 해리포터에 등장했던 방, 구조물, 캐릭터들을 재현해 놓은 것이 대다수였다. 사진 찍기 좋은 관광지였는데, 나는 혼자라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피곤한 탓에 화장도 하지 않고 안경을 낀 채로 가서 사진 찍을 의욕이 더욱 안 생겼다.

 

나는 '원더랜드'와는 별로 안 맞는 타입인 걸까? 아니면 혼자 갔다는 점과 그날의 컨디션이 문제였던 걸까? 나는 해리포터의 엄청난 팬은 아니기 때문에 얼굴에 철판 깔고 즐길 만큼의 열정은 안 생겼다. (아니 사실 나이가 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어렸을 때는 다니엘 래드클리프 덕질을 그렇게 했으며 ‘머글 퀴즈집’ 같은 온갖 부속 도서도 사모았다.) 다만 여러 가지 맛의 젤리빈과 버터 맥주의 맛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젤리빈은 정말 귀지 맛, 흙 맛 등 해리포터에서 나왔던 기이한 맛들이 모두 있었는데, 귀지와 흙을 먹어보진 않았지만 정말 그런 맛이 날 것만 같이 구현해냈다. 버터 맥주는 보리 음료에 버터크림 얹은 느낌이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엄청 만족스럽진 않은 시간이었다.

 

런던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들르기로 했다. 나는 소호에 가 어반 아웃피터스, 탑샵에서 미친 듯이 눈을 굴리며 쇼핑에 몰두했다. 쇼핑 후에는 역시 당 충전. 유럽을 오게 된 이후로 더욱 사랑하게 된 티 타임을 즐기러 왔다.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하다는 티 가게에 들러 스콘과 티를 시켰다. 아늑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티 가게였는데, 블렌딩 해서 파는 티와 스콘들이 행복한 티 타임을 선사하기에 완벽했다. 영국의 티 문화는 정말 사랑스러운 문화라고 생각한다. 티와 스콘으로 몸을 녹이며 생각한다. 이제 내일이면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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