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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May 26. 2021

압생뜨부터 에스까르고, 슈크림까지 빼먹을 수 없지

 [프랑스 교환학생기] 21. 나의 첫 번째 파리2

비가 내리는 파리의 아침. 오늘은 한인 민박 사람들과 함께 다니기로 했다. 비몽사몽 아침을 먹고 다 같이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나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유럽 학생증이 있었기에 미술관 관람이 무료였다.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곳으로, 미술관 건물 자체부터가 예술이다. 기차역의 역사와 미술관의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술관을 갔다 오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지만 보고픈 작품은 많기 때문. 오늘도 0층 밖에 관람하지 못했다.(프랑스는 0층부터 시작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피카소의 '압생뜨 마시는 술꾼'. 압생뜨의 연두색 색감과 작품 전반의 불그죽죽한 색감의 대조가 기억 남는다. 작품 속 인물이 어찌나 취해 보이는지 당장 나도 한번 압생뜨를 한 잔 마셔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나중에 집에 바 비슷한 거라도 갖게 된다면 이 그림의 모조품을 구해서 걸어 놓으리. 또 유럽 미술관에서 꼭 해줘야 하는 나만의 놀이가 있다. 마네와 모네와 세잔 구분하기. 마네는 부드러운 질감에 차분한 색감 그리고 현실적 주제들을 담는다. 모네는 밝고 화사한 색감에 풍경이나 아름다운 장면들을 많이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세잔은 채도 높은 강렬한 색채에 정물화가 많다. 나만의 방법일 뿐이니 틀렸다고 해서 분개하는 분은 없길 바란다.

 

미술관 관람 후 우리는 추천받은 에스까르고를 파는 레스토랑으로 가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Les Chartier였다. 천장이 매우 높고 크기가 꽤 큰 편이었으며, 수십 년 전부터 이런 인테리어였을 것 같은 클래식한 공간이었다. 서버들은 굉장히 정신이 없어 보였다. 특이했던 점은 우리가 주문하는 메뉴를 받아 적지 않고 오로지 머리로만 다 외운 다음, 식탁보(비닐로 돼서 볼펜으로 메모가 가능하다)에 다시 적어서 확인한다는 점. 이것도 하나의 퍼포먼스인 것인가?

 

레스토랑에 자리가 충분치 않아 우리는 다른 일행과 합석하여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세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과 다 연결된다고 했던가. 자연스레 테이블에 있는 다른 일행과 스몰 토크를 나누다가 남성분이 내가 지금 교환학생으로 있는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그는 캄보디아 사람인데, 스트라스부르 옆 도시인 꼴마르에 정착했다고 한다. 파리에 놀러 와서 선배님(?)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내가 글로벌 인사가 된 것 같아 우쭐해진 기분마저 들었다. 취한 듯한 기분을 잃고 싶지 않아서 와인도 한 잔 시켜버렸다.

 

에스까르고를 통해 맛본 달팽이는 골뱅이의 맛과 흡사했다. 앞으로 굳이 찾아 먹을 것 같진 않다.(훗날 한국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가고 이 생각이 바뀐다.) 오늘의 디저트는 빵 안에 아이스크림으로 슈를 채운 슈크림에 그 위에 쇼콜라를 주르륵 부은 달디 단 디저트. 내가 프랑스에 오래 살았다면 아마 비만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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