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일홈 May 29. 2021

파리 패션위크에서 있었던 일

 [프랑스 교환학생기] 22. 나의 첫 번째 파리3

우리 모두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각자 갈길을 가기 위해 헤어졌다. 나는 홀로 샹젤리제로 향했다. 샹젤리제는 파리에서 보기 드물게 사람이 붐비는 대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샹젤리제 아베크롬비를 지나 가는데 궁전처럼 생긴 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매장 입구에는 웃통을 벗고 있는 근육질의 젊은 남자와 인형 같이 예쁜 젊은 여자가 함께 서있는데, 너무나 무기력해 보여서 말 그대로 생명력이라곤 없는 '인형'같은 느낌이었다.

 

프랑스에서 정말 유명한 마카롱 브랜드인 라 뒤레에서 마카롱을 구입하기 위해 매장으로 들어섰다. 매장 자체가 정말 고급스럽고 인테리어가 아름다워서 한 번쯤 꼭 방문해보길 바란다. 마카롱 맛도 쫀득하고 달달하니 맛있다. 참고로 나는 피에르 에르메의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마카롱을 더 선호한다. 마카롱은 보기에만 예쁜 것이 아니라 만드는 데에 엄청난 정성과 시간이 드는 디저트라고 한다. 다시 한번 프랑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것들이 있다고 상상해봤다.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프랑스인들이 이해됐다. 전 세계인이 한 번쯤 동경하는 이유야 굳이 설명해야 할까.

 

파리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개선문에서 사진을 재빠르게 찍고 샤요궁으로 향했다. 패션위크의 릭 오웬스 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릭 오웬스 쇼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갔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는 쇼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참고로 샤요궁에서 보이는 에펠탑 뷰도 감격스러웠다. 미디어로만 에펠탑을 접하던 사람이 동경하던 에펠탑을 처음 봤을 때의 그 기분. 에펠탑이 만들어온 그 브랜드 이미지가 무엇이길래, 한참을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쇼 시간이 다가올수록 "패션 피플"들이 줄을 지어 쇼장에 입장했다. 릭 오웬스 쇼답게 검은색 착장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카리스마와 포스가 넘치는 사람들이 쇼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저렇게 입고 집 밖을 나올 수 있구나 싶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포토그래퍼들한테 인기가 많은 건 사실이다. 저들도 튀어 보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계산을 했을까 싶다. 역시 주목받기 위한 "쇼"와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현실"은 확실히 다르다.

 

나는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포토그래퍼 무리 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딱히 한국어를 한 것도 아닌데, 한국인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말 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도 남에게 먼저 말을 안 거는 성격인데, 타국에 나와 있으니 반가움이 앞서 먼저 다가가 본 것인데. 마음이 뾰로통해진다. 몇 시간이 지나고 날씨가 흐려져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근처 현대미술관이 늦게까지 한다길래 찾아갔는데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날도 춥고 해서 집으로 향하는데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가 흑인 여성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릭 오웬스 쇼를 가는 길이었다. 구글링을 해서 그녀에게 길을 알려줬다. 그녀는 DSLR을 목에 걸고 있는 나를 보고 포토그래퍼냐고 했다. 괜스레 겸연쩍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포토그래퍼는 한 때 내가 꿈꾸던 직업이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압생뜨부터 에스까르고, 슈크림까지 빼먹을 수 없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