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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Jun 25. 2021

프랑스 마트에 가면 마음이 풍족해진다

[프랑스 교환학생기] 27. 스트라스부르의 마트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꼽으라면, 이 순간을 절대 빼먹을 수 없다. 바로 마트 쇼핑. 마트에 가기로 마음먹은 날이면 마치 놀이공원에 간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 설레는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교환학생의 일상을 살다 보면 이렇게 된다.

 

우선 집에서 제일 가까우면서도 크기가 가장 작았던 곳은 집 근처 까르푸. 우리나라에 입점했다가 망해서 돌아간 걸로 유명한 까르푸는 프랑스에선 편의점의 느낌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규모가 작고 다른 가게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시간인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편의점 느낌인 만큼 가격은 비싸다. 하지만 가깝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꽤 자주 갔던 것 같다. 들고 다니기 힘든 물이나, 과일 종류를 자주 샀다.


다들 유럽 하면 납작복숭아라고들 하는데 나는 정작 납작복숭아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여름이 철이라 그랬던듯하다. 대신 내가 제일 사랑했던 과일은 서양 배. 아기 궁둥이 무는 것 같이 폭신하고 말랑말랑한 식감에 당도도 적당한 것이 딱 내 스타일이다. 어떤 프랑스 음식, 디저트보다 내 취향으로 남아있는 서양배. 냉장고에서 적당히 묵혀놓은 서양배를 꺼내 먹는 날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서양 배 다음으로 가장 사악했던 녀석. 바로 티라미수다. 프랑스는 자타공인 디저트의 나라인데, 편의점에도 디저트가 종류별로 있다. 그중 안 먹을 수 없는 녀석이 바로 티라미수다(이탈리아 디저트이긴 하지만). 다들 예상하는 맛이지만, 그만큼 거부할 수 없는 디저트. 까르푸에서 한 번 두 번 집어먹은 티라미수들은 착실하게 내 몸에 지방으로 붙었다.

 

까르푸를 벗어나서 마트로 가면, 프랑스에서 제일 유명한 유통업체 심플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이마트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마트만큼 여러 층으로 된 큰 건물은 아니고 한 층이고 주로 식료품 위주이다. 어느 나라를 여행가도 마트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까? 프랑스는 치즈와 와인코너가 아주 인상적이다. 다 먹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다. 치즈는 요리방법을 잘 몰라 사 먹지 못했고, 와인은 값도 싸고 맛있어서 밤마다 혼자 홀짝였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돌아올 뻔했다.

 

한편 파스타가 우리나라의 라면같이 쉽다고 들었는데 정말이다. 소스가 다 하기 때문이다. 리소토도 면이 밥으로만 바뀐 것뿐이다. 요리 실력은 미천하지만 마트에 판매되는 소스들이 워낙 맛있어서 요리를 뚝딱해낼 수 있었다.

 

여기서 물가에 대해 말하자면, 마트 물가는 비싸지 않다. 특히 과일이나 고기 같은 식재료는 한국보다 더 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건비가 비싸서 외식 물가가 비싸다. 가난한 학생 입장에선 외식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마트를 갈 때마다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몸도 마음도 가난한 내가 풍족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심플리보다 더 큰 규모의 '쇼핑몰' 수준의 공간이 스트라스부르에도 하나 있다. 이곳은 3층 규모에 크기도 굉장히 커서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스타필드 느낌이다. 식당, 의류 브랜드, 마트 등 다양하게 입점해있다. 이곳은 작정하고 친구들과 주말에 놀러 가던 곳이다. 규모가 워낙 커서 보는데도 오래 걸리고, 장 본 짐을 들고 다니는 것도 일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PAUL빵집에서 우선 빵 하나 물고 쇼핑을 시작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뺑 오 쇼콜라. 초코가 들어갔는데 뭔들 안 맛있겠냐만은. 그리고선 옷들을 찬찬히 구경해주는데 사실 한국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대게 미국 브랜드가 많다.

 

화장품은 한층 더 흥미롭다. 프랑스 브랜드 로레알부터, 메이블린과 같은 미국 브랜드, 독일 브랜드, 이탈리아 브랜드 등 다양한 브랜드들이 싼 값에 팔리고 있다. 우리나라로 오면 두 배정도는 가격이 뛰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식료품 코너에 가장 눈이 번쩍 뜨인다. 고기, 치즈, 빵, 디저트, 과일 등 사고 싶은 것들 천지지만 1인 가구 유학생인 나에겐 소량 포장돼 있는 것들만 겨우 살 수 있다. 그래도 와인이랑 과일은 꼭 챙긴다. 웬만한 겨울 과일은 다 먹은 것 같다.

 

멀리까지 쇼핑을 나서면 두 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낑낑대며 트램을 타고 집으로 향해야 한다. 프랑스 마트들은 늦게까지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마트에서 나서면 끽해봤자 해질 시간이다. 노을을 보며 짐을 들고 집으로 혼자 돌아갈 때면 항상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이 차오른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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