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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Aug 04. 2021

갈리아, 갈리아, 갈리아!

 [프랑스 교환학생기] 35. 내가 사는 갈리아


앞에서 언급했듯이 프랑스 거주 한인 카페에서 내가 살 집을 구하게 되었다. 그 집은 트램역 Gallia에서 도보로 5분 정도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이었고 내가 살 방은 1층이었다. 어둠이 고요하던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첫날밤, 명품 매장들이 쇼윈도를 밝히는 거리를 지나 도착한 갈리아. 처음 온 곳임에도 왠지 모르게 사무치도록 아름답고 정겨운 동네였다.



갈리아는 Ill(일) 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다. 일과를 마치고 갈리아역에 내릴 때면 항상 밀려드는 감동을 선사해주던 일강의 야경. 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 다리 뒤편으로 보이는 높이 솟은 스트라스부르대성당, 나지막한 동네 성당, 거대하고 고풍스러운 어떤 청사들, 아담하고 오밀조밀한 집과 상점들. 특히 일강에 있던 아틀란티코 선상 식당은 일강의 낭만을 더해줬다. 아틀란티코 선상 식당을 주변으로 화려한 알 전구 조명이 늘어져있고 그곳에선 항상 웃음소리가 피어 나왔다. 저녁에 외출을 하면 한껏 기분에 취한 프랑스인들이 호탕하게 내게 인사를 하곤 했으니까. 그런 예기치 못한 인사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져 버리는 것이다.


 

교환학생 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외로웠어도 갈리아역에 내려 야경이 나를 찾아올 때면 '그래도 행복하다. 이런 풍경이 내 것이라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가면 노랗디 노란 조명만이 덩그러니 켜진 휑한 집이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이 조명 아래서 영어로 된 비즈니스 케이스를 읽다가 내 시력이 한 단계는 떨어졌음이 틀림없다.


 

일강 주변은 산책하기도 정말 좋고,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기도 좋고, 많은 프랑스인들이 피크닉과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어쩜 이리 경관을 해치는 요소가 하나도 없는지 아무 곳에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화보처럼 나오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나는 배에 잔뜩 낀 지방을 빼보고자 일강을 조깅하기도 하고, 할 일이 없을 때면 하염없이 그곳을 걸으며 갈리아 일대를 탐방했다. 그저 집 밖에 나와 걷기만 하면 아름다운 스트라스부르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갈리아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살기 좋은 곳에 손꼽지 않을까 싶다. 우선 지리적으로 위치가 좋다. 스트라스부르역에서 그리 멀지 않고, 뭐니 뭐니 해도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 도보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또 주변이 학교로 둘러 쌓여 학생들이 많이 거주해 젊음을 느낄 수 있고, 치안도 좋은 것 같다.(그런데 스트라스부르의 치안은 대체적으로 좋은 듯하다.) 주변에 식당도 많고 슈퍼도 꽤나 있고, 헤쀠블리크 광장도 있어서 이미 산책할 곳이 많긴 하지만 선택지가 더 넓어진다.


 

갈리아 집을 중심으로 혼자서 여기저기를 쏘다녔던 순간들이 내게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대성당에 가 영상통화로 부모님께 대성당 전경을 보여주던 추억, 대성당 가는 길에 발견한 유치원의 귀여운 꼬마들, 거리에 있는 빈티지샵과 디저트샵들, 노부부들이 여유롭게 식사를 하던 테라스 식당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사랑스러웠다. 어느 비가 보슬보슬 오는 날, ‘나도 유러피안처럼 우산 없이 다녀보자!’하고 호기롭게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젠장, 이미 집에서 꽤나 멀어져 버렸는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사연이 있지 않고서 우산을 쓰지 않으면 이상한 여자가 되는 날씨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를 다 맞은 채로 거리의 명품 부띠끄들을 지나치면서, 이것마저 즐겁고 행복하다고 여기며 반쯤 미친 여자처럼 웃으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주변에는 나름 내가 자주 가는 단골 가게들도 만들어 두었다. 주식이  빵을 사던 단골 불랑제리집,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Lays 감자칩과 맥주를 종종 사던 허름한 슈퍼도. 자주 가지 않았지만 가끔  먹었던 그릴집 아저씨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봐주셨지. 그 중 케밥집이 최고 단골집이었다. 일주일에   이상은 갔던  같다.  그곳 케밥을 정말 좋아했는데, 그곳 케밥을  먹는 날이면 마치 한국에서 치킨을  먹는 기분이었다. 돌돌 말아먹는 케밥은 아니고 반달 모양의 주머니처럼 생긴 두툼한  사이에 닭고기나 돼지고기 혹은 소고기를 베이스로  속을 꽉꽉 채운 든든한  끼였다. 사실 가격은 그때 당시 6유로로 그다지 저렴하진 않았지만,  끼니  차려먹을  없던 유학생 입장에선 6유로에 속이   케밥을 먹는  꽤나 몸도 마음도 푸짐해지는 일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갈 때면 통유리 창의 아프리카 식당을 지나갔는데, 항상 그곳을 한번 가보고 싶었다. 늦은 저녁 그 식당은 은은한 조명을 뿜어내며, 통유리창 안에는 다양한 아프리카풍 장식품들 속에서 프랑스인들이 도란도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마치 하나의 영화 속 장면 같았다. 혼자 가려면 갈 수 있었겠지만 난 용기가 없었고 같이 갈 친구도 마땅치 않았다. 다시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하면 이 식당을 꼭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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