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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Aug 20. 2021

애증의 프랑스 집에서 일어난 일들

[프랑스 교환학생기] 42. 집과 집주인 커플


내가 살던 집은 갈리아의 한 아담한 골목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에 있었다. 내 스튜디오(프랑스에서는 원룸을 스튜디오라고 불렀다)는 1층이었는데 시설이 좋은 편도 나쁜 편도 아니었다. 프랑스 건물 내부가 으레 그렇듯 오래된 느낌이 가득했다. 집 문은 나무문에 열쇠로 여는 방식이었는데, 한 번은 오밤중에 문이 열리지 않아 머릿속이 하얘졌다. 급박하게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문을 잡아당기면서 열면 된다고 해서 안도감이 몰려옴과 동시에 얼마나 허무했던지. 이 애증의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구라곤 침대 하나와 책장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하나씩 보인다. 문을 기준으로 오른쪽 벽에는 주방 개수대가 붙어있고, 허벅지 정도까지 오는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화장실도 낡았는데, 샤워기는 수시로 고장 나서 나를 열 받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하루의 중요 의식 중 하나가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인데! 샤워기 헤드가 아닌 호스로 물이 줄줄 셀 때마다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변기도 닦지 않아서 생긴 건지 뭔지 모를 검은 때가 변기 배수관을 따라 시커멓게 자국나 있었다. 오밤 중에 화장실 변기를 무심코 들여다보면 마치 뭉크의 절규 마냥 내 얼굴도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마저도 친구들의 기숙사 화장실은 거의 비행기의 기내 화장실만 해서 이 정도에 감사해야 하나 싶었다.


 

방은 라디에이터에 오로지 난방을 의지하는 터라 방 전체가 훈훈해지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라디에이터를 계속 틀면 공기가 너무 건조해져서 건조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 같은 건성 피부에겐 최악의 난방법이었다. 게다가 이 라디에이터 관해서 슬픈 에피소드가 있다. 이 방을 떠나는 마지막 달 전기료가 한화로 40만 원 정도가 나온 것이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전기료를 아낀답시고 라디에이터를 껐다가 켰다가 했는데 그래서 그런 건가? 라디에이터에서 자꾸 빨래를 말려서 그런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가격은 말이 안 됐다. 이 조그만 방에서 40만 원이라니 말이나 되는가? 내가 직접 문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집주인 여자에게 문의를 부탁했고 그러겠다고 했지만,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한 번은 집에 산 지 며칠 되지 않아 방에 유일한 조명인 노란색 조명의 전구가 나갔고 이를 집주인 여자에게 말했더니 그 여자와 그 여자 남자 친구가 함께 와서(그들은 항상 함께 다녔다) 방의 전구를 갈아주었다. 앞서 말했듯 샤워기 헤드도 같은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잘 바꿔주는가 싶더니 그 남자가 대변인 마냥 내가 방을 빼는 날 정색하고 전구와 샤워기 헤드 값을 내게 청구했다. 큰돈이 아니라 바로 지불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왠지 그때의 상황이 찝찝하게 남아있다. 게다가 그 여자가 따지고 보면 월월세를 준 것인데 프랑스인인 진짜 집주인이 집을 보러 온다고 하면 나는 그 시간에 방을 비워야 했고, 가끔 프랑스 집주인을 집 앞에서 마주칠 때 프랑스어로 내게 뭐라 물으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프랑스어를 모른다는 답밖에 할 수 없었다. 난 잘못이 없는데 마치 몰래 숨어 사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게 억울했다. 또 알로까씨옹이라고 프랑스에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주거 복지금이 있는데 이 여자는 그 지원금도 받았을 터인데 어디로 갔는지 의문일 따름이다.


 

그래도 이 집에 살면서 혼자 자취하는 느낌도 내볼 수 있었기에 나름 소중한 경험이었다. 화장실 청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리가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쓰레기는 왜 이리 자주 나오는지 등을 몸소 느끼면서 그동안 부모님의 노고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나 자신을 자책했다. 한 번은 집 블라인드가 망가졌는데, 집이 1층인 탓에 도로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볼 수 있는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순간 블라인드가 영영 망가질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휩싸인 나는, 옷을 갈아입고 잠자는 것까지 동물원의 원숭이 마냥 구경거리가 되는 건가 싶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여기서 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상황에서 엄마가 대체 무슨 해결책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엄마는 엄마였다. 날 안정시킨 다음 차분히 블라인드를 조작해보라는 엄마 덕분에 동물원의 원숭이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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