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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Sep 01. 2021

프랑스의 유토피아 같은 도시 리옹

 [프랑스 교환학생기] 46. 리옹 1


왜 나는 기차 떠나기 십오 분 전에 바나나를 처먹고 있었을까. 기차가 지하철도 아니고... 결국 30유로를 더 내고 기차표를 바꿨다. 아무래도 밥을 굶어야 하나. 그런데 표를 바꾸는 와중에 기차역 직원이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South Korea”라고 답하니, “북한 나쁘다, 김정은 미친놈”이라며 욕한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기차표 놓친 것이 더 화가 난다 지금은. 북한 욕을 들으니 배설 욕구가 생겨서 그랬는지 중간에 집에도 한번 갔다 왔다. 역시 여행은 혼돈과 멘탈 붕괴가 공존해야 제맛이다.

 


네 시간을 달려 리옹에 도착했다. 큰 강을 지니고 있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리옹은 북부의 스트라스부르와는 아주 다른 나라에 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줬다. 리옹 시의 인구는  파리, 마르세유 다음으로 3번째로 크다. 인터폴의 본부가 리옹에 있고, 전통적으로 상업도시였으며 현재는 화학공업과 자동차·철도차량·기계·전기기계 등의 공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만큼 대도시의 풍모가 느껴졌고, 도시를 유유히 지나고 있는 론 강과 손 강의 세찬 물살은 도시의 크기를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리옹에는 심지어 지하철도 있다!

 


리옹에 도착하자마자 간 곳은 푸니쿨라를 타고 찾아간 푸르비에르 언덕. 푸니쿨라란 높은 산 언덕을 올라가는 열차이다. 경사가 꽤나 가팔라 마치 갱도로 들어가는 열차를 탄 것만 같았다.  갑자기 열차가 고장 나 롤러코스터처럼 수직 하강하는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밀려온다. 다행히 리옹의 고지대에 무사히 안착한 나는 리옹 일대를 여유롭게 산책했다. 간간히 보이는 직육면체의 모던하면서 고급스러운 주택들, 리옹 시내가 보이는 탁 트인 전망, 이곳을 굽어 살피는 노트르담 성당까지. 아주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 번쯤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는 인상이 드는 도시였다.

 


그 너른 땅에 사람이 얼마나 없던지, 학교 운동장만 한 잔디밭을 자기들 것인 마냥 뒹굴며 사랑을 나누는 젊은 커플의 모습에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이 커플이 푸르비에르 언덕의 풍경을 비로소 완성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르비에르 언덕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로마식 원형 극장도 있다. 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 극장은 크기가 꽤나 커서 마치 과거에 우주선 같은 게 착륙했을 것만 같은 생경 하면서도 공허한 느낌을 준다. 극장 계단에서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허공을 바라보는 리옹 주민들이 눈에 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의 전시를 홍보하고 있는 박물관도 보였다.



리옹의 노트르담 성당은 황금빛 조형물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고고하게 언덕을 지키고 있었다. 이 성당 주변에서 베이지 톤의 코트를 잘 차려입은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리옹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나도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푸르비에르 언덕은 산책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지대가 높은만큼 생활하기엔 단점도 있겠지만, 마치 속세를 벗어난 유토피아 같기도 했다.

 


야경을 보려고 기다리다가 해가 지지 않아서 다시 아래로 내려와 저녁 식사를 메뉴를 고민했다. 대성당 아랫동네는 아기자기한 리옹의 가게들이 펼쳐져 있어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 아주 좋다. 프랑스 디저트 가게, 리옹식 식당인 부숑, 다양한 공예품을 파는 부티크들이 골목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다. 특히 목각 인형 부티크가 눈에 띈다. 인형 안에 손가락을 넣어 조종하는 인형극인 ‘기뇰(Guignol)’ 리옹 출신의 인형 제조업자가 최초로 고안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겉보기엔 투박해 보이지만  수많은 인형들에게 제각각 영혼을 불어넣었을 장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거리를 걸으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혼자서라도 유명 맛집을 가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신 결국 길가에 파는 프랄린 타르트를  먹었는데 설탕 맛만 나는 딱딱한 과자였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점이 가장  단점이다. 먹는  부실해진다. 리옹에서 유명한 Trabule(트라불)이라는 이름의 비밀통로도 구경했다. 길과  사이를 누군가의 대문으로 들어가서 지나갈  있는 비밀통로 같은 길이라고 한다. 최초의 트라불은 4세기경에 실크를 나르는 곳으로써 활성화되다가 19, 20세기에는 노동 운동, 나치 저항 운동 등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해가 내려앉고 깜깜한 어둠이 찾아와서야 다시 야경을 보러 푸니쿨라를 타고 푸르비에르 언덕으로 다시 올라갔다. 도시가 커서 불빛이 저 멀리까지 내딛고 있었다. 하지만 추위에 떨며 혼자 야경을 보기엔 너무 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설상가상으로 옆에서 "곤니찌와", "니하오"를 외쳐대는 바람에 기분을 잡쳐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낯선 도시이다 보니 늦은 시간에 호스텔을 찾아가는 길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길거리엔 사람도 없고 도시도 스트라스부르보다 커서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진 않을까 하는 헛된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언가에 쫓기듯이 잰걸음으로 보도블록을 내디뎠다. 그래도 그 속에 낭만이 공존하는 느낌이 들어 리옹의 밤거리가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먼 발걸음 끝에 호스텔에 도착해 예약 확인을 하니 예약일이 오늘이 아닌 내일이란다. 다행히도 방이 남아있어서 이 밤에 새로운 숙소를 찾아야 하는 아찔한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호스텔 직원들도 잘생기고(?) 매우 친절해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샤워실에서 청년들이 웃통을 벗고 나오질 않나, 무리 지어 앉아 있는 유럽 애들이 인사를 해주질 않나. 청춘 영화 속에 동양인 엑스트라로 출연한 것만 같았다. 다만 유럽 호스텔에서 물건을 훔쳐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항상 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점이 유일하게 성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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