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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Sep 03. 2021

생 떽쥐뻬리의 도시 리옹에서의 유유자적하는 하루

[프랑스 교환학생기] 47. 리옹 2


오늘 아침은 리옹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인 부숑에서 리오네즈 샐러드를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나뿐이었다. 리오네즈 샐러드는 산더미 같은 야채에 베이컨 등 토핑을 얹고 수란을 올려 버무려 먹는 샐러드다. 미식의 도시 리옹에서 내가 먹은 리옹 음식이 리오네즈 샐러드뿐이라는 게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삼삼오오 즐겁게 수다를 떨며 식사하는 저녁의 레스토랑에 들어가기엔 너무 내 혼밥 레벨이 낮았다. 디저트는 산더미처럼 쌓인 크림과 초코 드리즐을 뿌린 슈. 과장이 아니라 정말 산더미였다. 프랑스인들은 이걸 혼자 다 먹는단 말인가?


 

론강의 흐르는 물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상념에 빠진다. 혼자 하는 유럽여행은 상념의 연속이다. 게다가 론강 앞에는 축 늘어진 사람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동상이 있는데, 맑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 동상 때문에 론강 산책이 더 심오해진다. 리옹은 맑은 도시이면서도 무언가 깊이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리옹 뮤지엄 이집트관에 오니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 같이 봤던 아포칼립토가 생각났다. 피라미드처럼 생긴 곳에서 머리가 댕강 잘려 굴러 떨어지는 장면을 실눈으로 보던 고등학생의 우리들. 세계 문화를 이렇게 생생하게 감상하며 느낄 수 있는 유럽 학생들이 부럽다. 이렇게 학생증으로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여행하다 보니,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미술관 주변의 조경에도 눈이 뜨인다. 조용히 독서하고 사색할 수 있는 나만의 야외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싱그러운 풀과 화려한 색깔의 꽃들이 삶에 주는 선물이 얼마나 거대한지 차차 깨달아가던 중이었다.

 


미술관 하나의 방에 오로지 나만 있는 순간이 있었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공기가 평온해짐과 동시에 생각에 잠긴다. 미술품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마치 작품 속의 인물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다. 쉬이 겪기 힘든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그 방을 나오니 유유히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프랑스 미술관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 작품을 모사하는 학생들, 아티스트들, 학생들을 이끌고 작품을 설명하는 선생님, 커플, 가족들, 커플들.

 


리옹 시내를 돌아다녔다. 벨쿠르 광장을 비롯해 길거리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분수 앞에서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분수가 참 크고 나는 참 작다. 생 떽쥐뻬리 동상도 볼 수 있었다. 생 떽쥐뻬리의 고향 리옹. 미식의 도시, 문학의 도시, 스포츠의 도시... 리옹은 가지고 있는 휘장이 많아 좋겠다. 길가다가 힙합 스타일의 옷 가게에서 민소매를 하나 샀다. 글래머 한 몸매의 흑인 여자가 프린팅 된 옷이었는데, 전혀 프랑스스럽지 않다가도 프랑스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리옹이라는 도시가 꽤나 커서 이틀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오래 머물수록 보이는 것들이 더욱 많을 것 같았다. 외로움을 뒤로하고 안시로 떠난다. 리옹에서 안시로 가는 열차 안에선 표 검사를 하지 않았다. 기차를 내릴 시간이 다가올 즈음에 기차 칸에 나와 어떤 남자 한 명만이 남았다.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일렁였다. 하지만 ‘기차 언제 도착하는지 아냐’, ‘유학하냐, 여행하냐’와 같은 스몰토크만 나누고 우리는 목적지에서 엉덩이를 들어 각자의 방향으로 향했다.

 


안시 역에 내렸다. 시간이 많이 늦어 무서웠다. 안시는 시골이라 사람도 없었고, 건물도 특색이 없어서 길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호스텔을 찾는데 길을 헤매다 노숙자가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또다시 휩싸였다. 다행히 구글맵 덕에 호스텔을 무사히 찾았다. 호스텔은 작고 허름했다. 자는 시간이라 불이 모두 꺼져있어서, 나도 세수만 간단히 하고 어두운 방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방 안의 사람들이 코 고는 소리가 꽤나 저음이었다. 유럽 호스텔은 혼숙이 많다. 다른 도시에서는 여자만 있는 곳으로 선택할 수도 있는 곳도 있지만, 안시는 선택권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는지, 그런 사례는 혹시 없었는지 하는 걱정을 대략 1초 정도 지속하다 이내 그리고 바로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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