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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Sep 06. 2021

스트라스부르 시내에서 혼자 놀기

 [프랑스 교환학생기] 49. 시내 탐방


나는 일상이 지겨워져 돈을 써야만 하겠다는, 혹은 이놈의 자본주의 시장이 내놓는 새로운 물건들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시내로 나간다. 시내란 곳은 동네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여있고, 새로운 물건들이 가장 많이 전시되어 있으며, 맛있는 음식들도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홀로 시내 마실을  자주 나갔다. 우선 갈리아에서 시내인 'Homme de Fer(옴드페흐, 번역하면 철인이라는 뜻의  이름)'까지 걸어서도 15 정도밖에  걸린다. 그러니 나는 틈만 나면 시내에 나갔고 혼자서 이런저런 세상 구경하는 것을 즐겼다.

 


시내에 대한 내 첫인상은 명품 부티크였다. 스트라스부르 첫날, 트램을 타면서 바라봤던 밤의 명품 부티크들이 내게 매우 인상 깊었다. 아무 곳에나 입점하지 않는다는 에르메스가 몇 개의 층에 걸쳐 있었고, 이를 마주 보고 있던 루이뷔통 매장도 이에 질세라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패딩 차림인 나도 집에서 십 여분 거리에 있어 부티크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 구경을 해도 이상할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한 번도 들어가진 않았다. 에르메스에서 제일 싼 물건도 사지 못할 터인데 들어가서 무엇하나. 하지만 명품을 구매하진 않았더라도 바깥에서 매장과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구경하는 일은 내 안목을 높여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스트라스부르에 당도하고 아마 가장 먼저 했던 학업적인(?) 일은 시내 ‘끌레베흐’ 서점에 가서 프랑스어 교재를 구입한 일이다. 프랑스어 수업 첫날 교수님께서 어떤 책을 사 오라고 설명해주셨고, 어느 서점에 가면 된다고 설명해주셨는데 나는 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어안이 벙벙한 채로 헤매고 있었다. 다행히 그 수업에 내가 스트라스부르 첫날 만났던 중국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참 인상 좋던 남자 중국인 친구가 내게 약도까지 그려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무사히 서점에 갈 수 있었다.



그 서점에서는 예기치 못했던 반가운 친구를 만나게 된다.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미술과 디자인 섹션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날도 어김없이 건축 서적을 보다가 우리 대학교의 건물 사진을 떡 하니 마주한 것이다. 먼 땅에 나와 나의 뿌리와 관련된 아주 티끌만 한 것이라도 발견하게 된다면, 마치 대단한 우연과 운명을 만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나는 이날 이 사진을 찍어서 학교 페이스북에 올려버리고 만다.

 


옴드페흐역에선 Fnac 백화점과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을 만날  있다.  백화점 모두 간간히 구경하긴 했는데,  다른 특색은 없었고, 마카롱 외에는 딱히 무언가를 구매한 적은 없다. 종종 향수 구경은 즐겨했다. 향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방앗간은 세포라였다. 이때 당시 한국에 세포라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라 한국인들이 세포라에 더욱 미쳐있을 때였다. 지방시 뷰티나, 어반 디케이  한국에선   없는 제품들이 모두 있어서  그대로 눈이 돌아간다. 나도 언제 이런 화장품을  보겠냐 싶어서 시내에 나가기만 하면 세포라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고 구매도 했다. 세포라의 기나긴 한쪽 벽면이 전체가 모두 향수 코너인 덕에 코가 마비될 때까지 시향을 했던 기억도 난다.


 

모노프리라는 마트도  자주 갔다. 모노프리에서만   있는 PB상품들이 있기 때문. 모노프리에서 파는 티라미수 디저트를 좋아해서 자주 사갔다. 본마망 쨈과 타르트   과자류들도 잔뜩 사곤 했. 특히 본마망 라인의 과자들이 포장도 예쁘기도 하고 프랑스 감성이 듬뿍 담겼는데,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까먹으면서 차와 곁들이기  좋다.  외에도 프랑스는 식료품이 풍부한 국가라 마트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


 

시내에 있는 H&M과  자라는 가난한 유학생의 친구나 마찬가지다. 저렴한 가격에 트렌디한 옷을 구매할 수 있다. 글로벌 브랜드인 만큼 한국에도 있어서 친근한 느낌마저 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철 입고 버려야 하는 옷들이 태반이긴 하다만, 그래도 저렴하게 많이 살 수 있는 행위가 주는 만족감을 생각해보면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했던 브랜드는 COS. 코스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난 이 브랜드를 알지도 못했는데 하염없어 거리를 구경하다 샵 분위기가 깔끔하고 세련되어 이끌리듯 들어갔다. 특히 남자 손님들이 많았는데, 모두 멋쟁이들이었다. 옷을 잘 입는 손님들이 많은 매장에 있으면 나까지 멋쟁이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이때부터 나는 이런 브랜드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코스에서는 지금까지도 잘 입고 있는 검은색 롱코트를 큰 할인폭에 구매했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더블 롱코트인데, 소재가 튼튼하고 유행을 타지 않을 디자인이라 아직까지도 여기저기 잘 입고 있다. 이때 샀을 때는 길이가 길고 품도 넉넉한 편이라 너무 커 보이진 않나 싶었는데, 오히려 지금 보니 오버핏이 더 멋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내 쇼핑의 마무리를 폴 빵집에서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폴은 다른 동네 빵집보다는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돈 썼다는 기분이 내고 싶을 때, 예쁜 빵집에서 예쁜 빵을 사고 싶을 때 들리면 딱 좋은 곳이었다. 모든 프랑스 가게가 그렇듯 폴도 길거리에 철제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손님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놨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며 빵과 커피를 즐기기도 했다. 멋을 내고 외출을 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스타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얀색 복슬복슬한 퍼 코트에 맨다리를 드러내며 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를 낀 채 스트라스부르 거리를 활보하던 여자분이 정말 인상 깊었더랬다. 이런 멋쟁이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스트라스부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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