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50. 부티크
프랑스 상점은 대게 부티크 문화다. 거대한 쇼핑몰에 속해 있는 경우는 소수다. 모두 개별 건물 1층에 속해있거나, 아예 건물 자체를 임대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상점 하나하나가 특색을 갖고, 이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부티크의 어원은 라틴어 아포테카(apotheca,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곳)다. 아포테카(apotheca)는 고대 프로방쓰어 보띠까(botica)가 되었고, 다시 고대 불어 보띠꺼(botique, 작은 가게)가 되었다가 14세기 중엽 불어 부띠끄(boutique)가 되었다고 한다. 1953년부터는 주로 ‘패션 가게’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문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대형 기업에 속해서 눈이 부신 조명과 미끄러지면 무릎 깨질 것 같은 대리석 바닥의 기운에 눌린 채 각 브랜드의 개성을 잃어버린 쇼핑몰들보다 훨씬 마음이 갔다. 부티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자기 브랜드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듯했고(물론 아닌 직원도 있다), 부티크에 들어가면 마치 그 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예를 들어 록시땅을 이야기해보자. 나는 한국에선 록시땅을 백화점에서밖에 접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부티크에 있는 록시땅을 보자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록시땅의 윗 집에는 사람이 사는 평범한 집이었고, 그 건물 1층에 위치한 록시땅 매장은 브랜드 오너가 소중하게 세상에 내놓은 자식들을 자랑하기 위해 마련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뷰티나 패션 브랜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캐시미어 전문 가게, 차 전문 가게, 작은 서점, 치즈 가게, 레스토랑, 공방까지 모두 부티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고유의 상점들이 모여 거리를 이루면 그 거리는 걷고 싶은 거리가 된다. 어떤 거센 기운에 눌리는 쇼핑 장소가 아니라, 그저 걸으면서, 생각하면서, 귀여운 물건들을 구경하게 되는 아름다운 거리가 된다.
부티크에서의 경험은 다른 쇼핑보다 더 기억에 남기도 한다. 나는 한 향기 전문 브랜드에 우연히 들어가 이런저런 제품을 시향 하다가 마음에 쏙 드는 향을 발견했다. 부티크의 직원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은 성심성의껏 내게 제품에 대한 설명과 정보를 주려고 노력했다. 이때 내가 구입했던 향이 파리 편에서 언급했던 'Mediterranean'이었다. 직원의 친절한 응대 덕분에 구매 경험이 더욱 뜻깊어졌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부티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딘 가에 속해 언제 쫓겨날지 모른 채 전투적으로 혹은 획일화되어 사는 인생보다, 윗집에는 사람도 살고, 밤이 되면 길거리를 비춰주는 조명 역할도 되고, 누구나 이웃집처럼 놀러 올 수 있는 포근하면서도 고유의 개성이 있는 그런 부티크 같은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해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그런 부티크 같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