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54. 로마1
로마의 면적은 서울의 두 배에 달하며 인구는 300만 명 정도다. 인구밀도도 낮을 것 같은데 출퇴근 시간은 지옥철이었다. 기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인 민박까지 가는 데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 출근 시간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열차 칸이 만원이라 다음 열차를 타려고 쭈뼛거리고 있었는데 눈앞에 있던 이탈리아 남자가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타라고 배려(?)해주는 것이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꾸역꾸역 사람 틈에 끼여 열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나를 끌어줬던 남자 두 명이 뒤에서 자꾸 내 가방을 건드리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낌새를 눈치채고 지갑과 여권 등이 들었던 그 가방을 내 가슴 앞쪽으로 다시 잘 간수하고 주변 사람들을 째려봤다. 다행히 그들은 내 가방을 더 이상 노리지 않았지만, 두 명의 이탈리아 남자가 저지른 치졸한 짓에 아직도 화가 난다.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 같이 생겼었는데, 이탈리아에선 소매치기가 투잡인가? 소수의 나쁜 사람들 때문에 나라 이미지를 망치는 듯했다.
빈털터리가 될 뻔한 위기를 모면한 데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온 터라 매우 피곤한 상태로 겨우겨우 한인민박까지 도착했다. 그래도 가진 건 젊음뿐이라 민박집에서 한 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고 바로 로마 시내로 나섰다.
날씨는 흐릿흐릿했다. 그래도 로마의 유명한 유적지들을 먼저 탐방하기로 한다. 제일 먼저 간 곳은 포로로마노. 로마 역사 내내 포로로마노는 로마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개선식, 공공 연설, 선거, 심지어는 검투사 경기까지 국가의 중대 행사를 열었다. 현재는 몇몇 잔해와 기둥만 남아있다. 로마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가지 않은 터라 깊은 사유를 하지 못한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지식을 떠나서 그 공간은 많은 것을 말해주는 곳이었다. 비록 기둥만이 남아 폐허가 되어버린 곳이지만, 그 잔해 속에서도 이 공간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가 상상된다. 머릿속 시뮬레이터로 주초부터 지붕까지 건물을 쌓아 올리며 고대 로마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시켜본다. 고대 로마 사람들도 로마의 아름다움에 취하며 인생에 대해서 고민했겠지.
투박한 돌덩어리들과 알록달록한 꽃, 푸른 잎들 그리고 고고한 깃털을 뽐내는 새들이 포로로마노를 수놓는다. 나는 이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팔을 활짝 벌린 채 기념사진만 찍고 갈 뿐이지만, 로마의 긴 역사를 담은 이곳에 짧게나마 존재했다는 사실에 괜스레 가슴이 벅차 진다. 다음번에 왔을 때는 로마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았으면 싶다.
포로로마노를 들른 후 팔라티노 언덕을 거쳐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콜로세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는데, 이 거대한 공간이 관람객들과 검투사들로 채워졌다니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역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거대하다. 한편 나와 내 친구는 로마의 유명한 유적지들을 구경했지만 사실 평소에 하던 동네 산책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우리에게 학문적 토론 따위는 일체 없고(내 친구는 심지어 사학과다.) 그동안의 근황과 최근의 관심사 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래. 역사가 거대하지만 그 역사도 들여다보면 일상의 연속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친구가 찾아온 이탈리아 로컬들만 간다는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정통, 정통 하지만 음식에 관해 정통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아주 어려워 보인다.) 거기서 우리는 양고기와 까르보나라를 먹었다. 이미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통' 까르보나라와 우리가 한국에서 접하는 까르보나라는 사뭇 다르다. 이탈리아에서 먹는 진짜 까르보나라는 크림소스 없이 염장육을 볶아 낸 기름에 치즈와 달걀노른자를 버무리는 파스타라고 한다. 내가 먹었을 때도 다른 소스 없이 고기 기름 맛만 나는 것이 약간 뻑뻑한 듯 낯선 느낌이었지만, 진한 고기 향과 고소한 치즈가 어우러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진실의 입으로 향했다. 진실의 입은 지름 1.5m에 무려 1,300kg이나 되는 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얼굴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형물이다. 눈구멍, 콧구멍, 입이 뚫려 있고, 현재까지 정확한 용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측되기로는 신전의 하수도 뚜껑이나, 제물을 바칠 때 나오는 피를 바닥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은 중세 시대에 '거짓말을 한 자는 이 조각의 입에 손을 넣어서 잘려도 좋다'라는 서약을 한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벽 뒷면에 손을 자르는 사람이 도끼를 들고 서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유래는 뒤로 하고 아무래도 진실의 입하면 깜찍한 오드리 헵번이 떠오른다. 오드리 헵번만큼의 상큼함과 미모는 못 따라가지만 전 세계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진실의 입에 손을 잘릴 것을 각오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를 보고 "예쁜 공주님~ 손 잘린다~"하며 열심히 업무에 임하고 있던 이곳 관리인이야 말로 로마의 진실의 입인 듯했다.
캄파돌리오 광장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으로 내가 봤던 광장 중에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의 캄파돌리오 광장은 광장으로서의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고 관광지의 역할만 수행하는 듯했다. 마치 작업자가 입을 법한 네온색 의상을 입은 관광객 무리들이 우리에게 함께 사진을 찍어줄 것을 요청했다. 쿨하게 한번 찍어준다. 이후 우리는 다과 시간을 가지러 그곳을 떠났다.
날씨마저 화창하게 개어버려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베네치아 광장을 찍고 판테온에 도착한 우리는 유명한 커피가게에서 그라니따를 먹었다. 그라니따는 과일이나 시럽 등을 얼려 만든 슬러시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는 디저트다. 그라니따 맛이 어찌나 달던지 머리가 아찔해졌다. 트레비 분수에 와서는 동전도 한번 던진다. 이탈리아는 먹을게 끊이지 않아서 정말 좋다. 이번엔 한국인들에게도 정말 유명한 지올리띠 젤라또를 먹었다. 아, 이탈리아는 젤라또만으로도 여행의 이유가 충분한 나라다. 특히 한국인들에겐 쌀맛 젤라또가 인기가 많다. 고소한 쌀알이 톡톡 씹히는 것이 성별 나이 할 것 없이 좋아할 맛이다.
같이 여행을 한 친구가 한 계획하는 성격이라 굉장히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덕에 여러 맛집을 가볼 수 있었지만, 몸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인민박에서 와인 파티를 벌이고 있던 것이다. 우리는 강제로 민박집 아주머니의 인생사를 청취하고, 한국인들과 수다를 떨었다. 나는 역시 새로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쉽게 여는 타입은 아니다. 다들 한국에 자기 고향에 놀러 오면 꼭 연락하라는 공수표를 던졌는데 그러한 대화가 어찌나 공허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지던지. 인간관계가 언제나 즐겁고 쉬운 사람들이 부러웠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