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55. 로마2
오늘은 친구와 미리 예약한 한국 투어 업체의 가이드 투어가 예정된 날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나와 바티칸으로 부랴부랴 향했다. 비수기에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30분 이상은 줄에 서있어야 했다.
바티칸은 국민이 800명에 교황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알록달록 원색의 유니폼을 입고 우뚝 서있는 바티칸 근위병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엄청난 엘리트들이라고 한다. 근위병들의 유니폼도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고. 바티칸을 입장하는 순간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하다.
우리는 바티칸 박물관, 시스나 소성당, 성 베드로 성당을 방문했다. 시스나 소성당에 있는 천지창조는 설명이 금지되어있는 신성 구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투어 전에 미리 설명을 해주셨는데 천지창조에 관한 설명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이드님의 흡입력 있는 설명과 바티칸이라는 공간이 만나 내 안에 성령의 필터 같은 것을 씌워버리는 것 같았다.
그 내용은 이렇다. 원래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였으나, 그의 재능을 시기한 도나보 브라만테가 교황 율리오 2세에게 그를 엿 먹이려고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릴 것을 요구했고, 미켈란젤로는 이를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리기 위해 작업대에 서서 고개를 뒤로 젖힌 불편한 자세로 4년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물론, 이 작업은 엄청난 중노동이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목과 눈에 심한 이상이 생겼다. 게다가 변덕스러운 교황과의 다툼도 있어서 미켈란젤로는 이 작업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 조각상인 라오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다수의 고대 대학자들이 등장하는 아테네 학당, 그리고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라이벌 구도와 그 외 야사들까지. 이런식으로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박사 학위라도 밟을 수 있을 것 같다. 몇 천년 된 바닥을 밟으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마주하고 있다니, 인류의 위대함에 절로 겸손해지고 또 감격스러워진다. 바티칸 박물관 입장 티켓엔 아테네 학당이 그러져 있는데, 티켓과 내 눈앞의 진짜 아테네 학당을 포개어 인증 사진을 찍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성 베드로 성당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피에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현재는 무신론자에 가깝다. 하지만 이러한 나마저 저절로 다시 신을 믿게 된 순간은 피에타 앞에 섰을 때 였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 주로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다른 조각가들의 피에타가 무색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켜 후대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바티칸의 꼭대기인 쿠폴라에 올라가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체력이 달려 이를 포기하고, 바티칸 우체국에 발길을 돌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카드를 썼다. 성스러운 마음이 가득한 상태로 카드를 썼건만, 현재는 그 카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감동이 이리 짧고 전해지기 어렵다니. 성물 가게에서 나를 비롯한 엄마, 대녀들을 위한 묵주 팔찌도 샀다. 오늘날의 바티칸은 미켈란젤로의 장인정신을 이어받지 못한 걸까. 죄다 조악해 보이는 것들 뿐이었다. 이것도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여행지에서의 소비는 소비하는 순간의 기쁨이 더 큰 듯했다.
바티칸을 나서는데 어린아이들의 공놀이 공에 강스파이크를 맞았다. 순간 화가 났지만 인류에 큰 유산을 남긴 미켈란젤로의 후손이니까 조금 너그러워지기로 한다. 우리는 가이드님이 추천해주신 식당으로 향했다. 햇빛이 쨍쨍한 로마의 길거리에서 뇨끼를 먹었다. 뜨겁고 쫀득한 뇨끼가 마치 이탈리아의 날씨와 겨루기라도 하는 듯했다. 후식으로는 3대 젤라또 집 중 하나인 올드브릿지에서 누텔라, 리코타 피스타치오, 리모네 세 가지 맛을 선택해 젤라또가 주는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당이 주는 짜릿함이 정수리까지 차오른다.
우리는 안젤로 성으로 향하며 배를 꺼뜨렸는데 성문이 닫혀서 이를 포기하고 그 앞에 있는 성 천사의 다리에서 사진을 잔뜩 찍기로 했다. 파랗고 높은 하늘과 다리 아래의 반짝이는 물빛의 강, 다리 위 조각상들의 웅장함이 어우러져 사진 한 장 한 장이 절로 예술 작품 된다.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이 참으로 티없이 행복했다.
우리는 다시 스페인 광장으로 넘어가서 티라미수로 유명한 폼피에서 사 온 티라미수를 들고 앉아서 수다를 떨며 디저트 타임을 가졌다. 스페인 광장은 평온하면서도 활기가 맴돌았다. 티라미수 위에 얹어진 흙처럼 생긴 코코아 파우더 때문에 헛기침을 몇 번 내뱉는다. 아무렴 어떠랴. 나는 아무래도 이탈리아가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