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61. 프라하2
천천히 숙소에서 나와 근처 체코 식당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갔다. 고깃국의 일종인 굴라쉬를 맛볼 수 있었다. 아점 치고는 조금 거했고, 평범한 맛의 식당이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음식을 중시하는 편이다. 매끼 맛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집착은 없지만, 그래도 가는 동선 안에선 최대한 맛집인 곳을 가려고 한다. 한정된 시간과 돈으로 내가 채울 수 있는 칼로리와 식사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식사를 마치고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으로 올라갔다. 프라하 성은 10세기 초 건설되었으며, 현재 기네스북에 가장 큰 성으로 등재되어있다고 한다. 체코 대통령 관저가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프라하 성을 둘러보았다. 사실 성 자체는 다른 곳에 비해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라하성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게 해 준다. 높은 지대로 올라갈수록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빨간 지붕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이 어릴 적 손에 꼭 쥐고 있던 동화책처럼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프라하 성 중턱에는 카페나 식당이 종종 있는데,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면 아마 최고의 뷰를 식사와 함께 곁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프라하 블타바 강과 주변 산이 어우러진 채 까를교를 비롯한 시내가 보인다. 게다가 날씨까지 완벽하다. 4월의 프라하. 프라하의 봄. 중세 시대인지, 구소련인지, 21세기인지 헷갈리게 하는 시간을 잠가버린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 성에서 종종 보이는 전동 킥보드를 탄 관광객들만이 지금이 몇 년도인지를 설명해주는 듯했다.
21세기임을 말해주는 또 다른 하나는 프라하성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다. 붉은빛 지붕 일색인 와중에 초록 천막에 그려진 사이렌이 눈에 띈다. 미국산 사이렌의 힘은 강력하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그곳을 더욱 유명한 랜드마크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성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국립미술관만 들어가 보았다. 렘브란트, 고야, 루벤스의 작품이 있다는데... 왠지 썩 내키지 않아서 길게는 감상을 하지 않고 일찍이 나왔다. 아직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배가 불렀지만 같이 간 언니를 따라 식사를 하러 향했다. 립과 꼬치구이를 시키고, 코젤 맥주를 시켰다. 달달한 계피 가루를 뿌린 코젤 생맥주의 맛이 어찌나 좋던지. 알싸하면서도 깊은 홉의 향이 올라오는데 고소하면서도 씁쓸한 것이 딱 내 취향이다. 시나몬 가루가 그 달콤 쌉싸름한 맛을 증폭시켜준다. 코젤은 체코어로 염소라고 한다. 왜 염소를 내세우게 되었을까? 현재는 아사이에 매각되었다고 한다. 레닌이 살아 돌아와서 역정을 내어도 체코인들은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번외로 프라하에서 꼭 스카이 다이빙을 하고 싶었다. 이전에 프라하로 교환학생을 간 선배가 스카이다이빙을 한 것을 보고 나도 꼭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체코는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딱이었다. 그런데 같이 동행한 언니가 하지 않겠다 하여 못하게 되었다. 혼자 하기엔 아무래도 겁이 났다. 스카이다이빙은 저때가 내 인생의 적기였던 듯하다. 지금은 겁이 늘어 돈을 준다 해도 못한다.
프라하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한 채 다시 유로라인에 올라타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부다페스트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어 버스 안에서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시청했다.(결과적으로 이 영화 시청은 도시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는 도움이 안 됐다.) 이 영화는 원제는 헝가리어로 슬픈 일요일이란 뜻의 Szomorú Vasárnap(소모루 버샤르너프)라는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다. 당시의 우울한 시대상과 맞물려 많은 사람의 자살을 부른 곡으로 유명하며, 작곡자인 레죄 마저 노래가 작곡된 지 한참 뒤인 196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영화 내용은 다소 난잡했다. 무려 세 명의 남자가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치정 사건이 발생한다. 하루는 A와 동침한다면 하루는 B와 동침한다. 서로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남자들이 여자 주인공 때문에 자신들이 너무 불행하다고 하니 여자는 이에 마음이 상해한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를 보는 듯하다. 보는 사람이 피곤해지는 스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