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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Oct 03. 2021

글루미 데이 인 부다페스트

[프랑스 교환학생기] 62. 부다페스트1


프라하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는 유로라인 버스로 다섯 시간 반이 걸렸다. 슬로바키아를 지나는 루트였는데, 유럽의 장점은 아무래도 다양한 나라를 육로로 활보할 수 있다는 점 같다. 단지 차를 타고 바깥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지형, 문화가 느껴진다. 지나가는 길에 광활한 유채꽃 밭을 만났다. 어찌나 넓은지 꽃밭과 하늘이 맞닿아 있다. 하염없이 이동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여행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목적 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 동안 생각보다 많은 사유를 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이성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드디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부다페스트는 프라하보다 규모가 크다고 느껴지는 도시였다. 부다페스트의 면적은 서울의 5/6 수준에 인구는 175만 명이다. 우리는 지하철을 탔는데 당장이라도 폐차장 아니면 박물관으로 가야 할 것 같은 외관의 열차였다. 1896년에 처음 개통을 했다고 하니, 열차에게 고생 많다고 토닥여주고 싶을 지경이었자. 그런데 또 새로 개통한 듯한 곳을 지나니 갑자기 시설이 좋아진다. 부다페스트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재밌는 곳인가 보다.


 

도시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우울했다. 글루미 선데이를 보고 와서 그럴까. 부다페스트 길거리에 있는 젊은 사람들의 표정도 모두 우울하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비교가 된다. 2011년에 헝가리가 EU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여파가 남아 있는 걸까. 상점에서 파는 옷을 보면 유행이라는 단어는 어디 존재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기능에만 충실한 옷들이 전시되어있다. 사회 상황에 대한 반항의 목소리이기라도 한 것인지 형형색색의 머리 색에 수십 개의 피어싱을 한 펑크족 느낌의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날씨도 프라하보다 더 춥고 흐렸다. 프라하에선 코루나를 사용했다면, 부다페스트에선 포린트로 화폐 단위가 바뀐다. 화폐 가치가 더 떨어졌다. 한편 우리가 묵은 호텔은 오래됐지만 깔끔한 대형 호텔이었다. 이름도 '그랜드 호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떠오른다. 외형은 전혀 다르지만 괜스레 의미 부여를 해본다. 호텔 내부는 방 크기는 굉장히 넓은데 인테리어라곤 하나도 없이 침대,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 황량한 부다페스트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짐을 풀고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국회의사당은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 동쪽에 있는 코슈트 러요시 광장에 위치한다. 건축가 임레 슈타인들이 설계하였고 고딕 복고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902년에 정식으로 개장하였다고 한다. 헝가리 국회의사당은 완공 이래 현재까지 헝가리에서 가장 거대한 건물이기도 하다. 고딕 양식이 주는 특유의 웅장함과 위압감이 다뉴브강은 물론 부다페스트 도시 전체를 압도하는 듯했다. 부다페스트는 국회의사당이 왕관의 보석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다페스트는 1873년에 부더, 오부더, 페슈트, 이 3개의 도시가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이다. 행정구역을 통합한 지 약 7년 후, 의회는 국가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하여 새로운 국회의사당 건물을 짓기로 결의하였고, 다뉴브 강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국회의사당을 짓기로 합의하였다. 새 국회의사당을 짓기 위한 국제 공모전이 열렸고, 이 공모전에서 임레 슈타인들의 안이 뽑혔다고 한다. 1885년에 공사가 시작되었고, 1904년에 이르러서야 공사가 끝났다. 한편 임레 슈타인들은 국회의사당이 완공되기 전에 눈이 멀었고, 결국은 공사의 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략 10만 명의 인부가 국회의사당 건설에 동원되었고, 4천만 개의 벽돌, 50만 개의 보석들, 40킬로그램의 순금이 이 국회의사당을 짓는 데에 들어갔다. 나는 건물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다른 여행자들이 찍은 사진을 보니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답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시간대에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한 부다페스트를 내려다보면 오로지 국회의사당만이 거대하게 빛난다. 국회의사당 말고는 이 도시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착각을 준다. 길거리엔 사람이 적고, 도시는 황량하다. 국회의사당은 너무나 화려한 위용을 내뿜는데, 그 화려함이 오히려 이 도시를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다뉴브 강가에 앉아 국회의사당을 매일 같이 바라본다면, 글루미 선데이가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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