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63. 부다페스트2
우리는 늦잠을 늘어져라 자고 난 뒤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해가 맑게 떴다. 국립박물관을 지나는데 예쁜 길을 발견하니 반짝 기분이 좋아진다. 낯선 도시였던 부다페스트에 대해 점점 알아 가는 중이다.
중앙시장은 깔끔하게 시설이 갖춰진 시장이었다. 돔 경기장 같이 거대한 규모의 천장이 있는 원형 건물로, 천장은 유리로 되어 햇빛이 스며든다. 아침을 먹지 못한 우리는 우선 배부터 채우기로 한다. 여느 시장과 같이 음식을 사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이 되어있었다. 나는 튀긴 빵에 피자처럼 이것저것 얹어서 구워주는 음식을 먹고, 같이 간 언니는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비슷한 매운 소고기 스튜인 “굴라쉬”를 먹었다. 사람들과 섞여 복작거리며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는 느낌이다. 후식은 오렌지로 시장에서 바로 구입해 먹는다. 이후 이런저런 식재료를 구경했는데, 식재료 구경하는 건 여행에 빼먹을 수 없는 재미다. 그 나라의 식문화를 배울 수 있고 또 맛볼 수도 있는 귀한 기회다.
우리는 시장을 나와 다뉴브 강을 맞이했다. 다뉴브강이 주는 탁 트인 느낌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한강이 떠오르기도 한다. 겔레르트 언덕도 가고 싶었지만 동행이 원치 않아서 가진 못했다. 날이 좀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그래도 꿋꿋이 우리는 바찌 거리로 향했다. 부다 왕궁이 최종 목적지였는데, 추위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눌렀다. 중간에 카페 제르보에서 당 충전을 했던 게 신의 한 수. 유럽에서 디저트를 먹지 않는다면 바보다. 이곳에서 먹은 레몬 아이스크림을 얹은 모히또는 적당히 상큼하면서 달달한 것이 잠 오는 오후나 식후에 먹으면 딱일 것 같았다. 다른 디저트는 슈 위에 크림과 초코 드리즐, 초콜릿, 초코 퐁듀를 곁들인 것인데, 맛이 없을 수 없는 극강의 디저트였다. 고급 디저트 카페인데 가격 또한 착해서 돈을 쓰면서도 기분이 너무 좋다. 이렇게 점점 부다페스트의 매력에 스며들고 있다.
부다 왕궁에서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전경이 탁 트여서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 들긴 했다. 왠지 모르게 부모님 생각도 났다. 군인들이 뭔가 교대식 같은 것을 하고 있었는데 회갈색과 카키색이 섞인 군복을 입고 다리를 90도로 펴며 걷는 모습을 관찰했다. 나는 유럽에 오면서 인종 감별 능력을 터득했다. 헝가리 사람들은 우랄족이라고 한다. 게르만족, 우랄족, 앵글로색슨족, 슬라브족 등.. 유럽은 대게 다민족 국가이긴 하지만 그래도 각 국가별로 주요 민족이 있고, 그 주요 민족을 파악하다 보면 역사가 보이기 때문에 인종 감별이 꽤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사실 그것보다 외형의 특징을 파악하는 게 재미있다. 한국인들이 한국, 중국, 일본인을 찰떡같이 구분해내듯이 서양 쪽에서도 전문가가 된듯해 뿌듯하다.
우리는 호텔에 돌아와 쉬면서 중앙시장에서 산 토커이라는 술을 마시기로 했다. 토커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인데 헝가리산 최고급 와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술병을 따기 위해 컨시어지에 전화를 했다. 호텔 컨시어지에 전화하는 일은 쓸데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얼마간 뒤 백발이 멋있으신 연세가 있어 보이는 웨이터가 친히 방까지 와 와인을 따주었다. 엄청나게 친절한 서비스에 기분이 몇 배는 더 좋아졌다. 토커이로 취하는 밤, 나는 언니를 거쳐간 남자 이야기를 들으며 부다페스트에서의 이튿날 밤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