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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Oct 07. 2021

빈에서 보내는 예술적인 하루

 [프랑스 교환학생기] 65. 빈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다름 아닌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도시. 영혼의 짝을 만나 밤이 새도록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판타지스러운 상황을 잠시나마 꿈꿔본다. 빈은 프라하나 부다페스트에 비해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을 풍겼다. 빈의 면적은 서울의 2/3에 인구는 190만 정도다. 빈은 많이 알려졌다시피 예술이 흘러넘치는 도시다. 우리는 빈에서 하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하루라는 시간밖에 없었기에 빡빡한 일정을 계획했다.


 

첫 목적지는 벨베데레 궁전. 그곳에서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만나는 것이 목표다. 클림트의 그림은 기대보다 더욱 아름다웠고, 애잔했고, 강렬했다. 황금색, 초록색 같이 강렬한 색채와 몽환적인 작중 인물들의 눈빛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경계와 구분이 모호한 클림트의 그림은 그의 천재성을 뽐내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화려한 그림은 좋아하지 않지만 클림트 속 여인들의 눈빛은 정말이지 거부할 수가 없다. 내가 남자라면 그림 속 여인들과 사랑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한편 에곤 실레는 클림트의 제자였지만 점차 그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편 그는 어린 여성들의 나체를 그린다는 죄목으로 투옥한 경험이 있는데, 당대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만큼 그의 작품은 성적인 것이 많다. 하지만 예술가가 성을 다루지 않는다면 누가 다룬단 말인가. 인간의 한 부분, 아니 어쩌면 전부를 차지하는 성에 대해 그의 28세라는 짧은 일생 동안 그만의 개성 있는 화풍으로 담아낸 에곤 실레. 그의 작품은 실제로 만났을 때, 나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작품 한 작품 발걸음을 옮기기가 아쉬웠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인간 내면의 감각을 건드리는 그런 기폭 장치가 달려 있었다.


 

여유를 두고 며칠에 걸쳐 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이내 발걸음을 야외로 돌린다. 벨베데레 궁전 자체도 참 볼만하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잘 재단된 옷감처럼 궁전과 정원이 모두 자로 잰 듯 반듯하다. 오히려 너무 웅장한 궁전보다는 이런 아담한 궁전이 더 사람 사는 곳 같이 느껴진다.  과거 오스트리아 왕족들이 이 사랑스러운 궁전에서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상상력을 동원해본다. 오스트리아를 600년 동안 지배했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 이런 왕족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상상에 한계가 온다. 나는 전생에 잘 나가는 집안 출신은 아니었나 보다.


 

우리는 국립 오페라 극장 쪽으로 넘어왔다. 갑작스레 오페라 관람을 결정했다. 모차르트 의상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표를 파는데, 동행한 언니가 이에 넘어간 것이다. 길거리에서 우리를 붙들고 영업을 하길래 이거 사기가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저씨의 인상이 너무 좋으시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사기는 아니었다. 괜한 사람을 의심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해진다.

 


공연 전 우리는 빈에서 유명하다는 호텔 카페 자허의 케이크 ‘자허토르테’를 먹었다. 마치 모형 같은 정갈한 생김새에 깔끔한 초콜릿 맛이 나는 케이크였다. 디저트라는 존재는 정말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길티 플레저다. 오페라 시작까지 시간이 남은 우리는 빈의 거리를 거닐면서 호프부르크 왕궁을 지나 미술사 박물관 쪽으로 향했다. 호프부르크 왕궁은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단아한 이미지를 주는 예쁜 왕궁이었다. 날씨까지 받쳐주어 사진 찍기에 제격이었다.

 


에곤 실레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돼 있다는 레오폴드 미술관을 포기하고 간 미술사 박물관. 오디오 가이드도 빌렸다. 그런데 레오폴드를 갈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이탈리아 화가들 작품이 많았는데 보고 싶었던 에곤 실레 쪽이 나았을 뻔했다. 그래도 '바벨탑'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익했다.


 

드디어 오페라 타임이다. 아, 정정하자면 오페라라기보다 소규모 클래식 음악 공연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파리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오페라 극장 같은 곳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목적지를 찾아가는데 속으로 '이런 곳에 있다고?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사실 우리가 지불한 돈은 인당 20유로였다. 오페라 극장일 리가 없다. 우리는 맞게 찾아갔고, 한국의 결혼식장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공간에서 모차르트 콘체르토(협주곡)를 감상할 수 있었다.


 

공연은 매우 좋았다. 대다수가 관광객인 듯했다. 소규모 분위기에서 모두가 흥겨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겼다. 협주곡에 발레도 가미된 공연이어서 나 같은 클래식 문외한에게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막판에 졸음을 이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클래식 알레르기가 있는 듯하다. 클래식이 나오는 공연에서 잠을 자지 않은 적이 없다.


 

공연이 끝나고 빈의 밤거리를 걷는데 빈은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에 비해 치안도 좋은 듯했다. 하룻밤의 꿈처럼 어느새 끝나버린 빈에서의 일정. 떠나기 싫어서 밤에 몰래 울었다는 사실은 믿거나 말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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