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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Oct 11. 2021

어김없이 삶의 흔적들은 쓰레기통으로

 [프랑스 교환학생기] 68. 스트라스부르를 떠나며


여행은 아직 남았지만 스트라스부르를 떠나야 하는 날이다. 4개월 남짓했던 프랑스에서의 시간이 정리되는 날이다. 놀랄 만큼 기분이 차분해진다. 내 살림살이를 줄 만한 사람도 없다. 친구 사촌동생을 부를까도 했지만 바쁜데 방해가 될까 싶어 관두기로 했다. 독일에서 친구의 친구에게 받아온 밥솥부터, 비루하게나마 나의 식탁을 책임져 주었던 그릇, 칼, 도마 등도 모두 쓰레기통 행이다. 살림 살이랄 게 별로 없어서, 옷이랑 화장품, 서류와 책 등은 모두 그대로 가져가다 보니 버릴 것은 모두 식기구다.

 


이곳은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서( 동네만  하는 건지 프랑스가   하는 것인지는  수가 없다.) 모든 살림살이를  곳에 때려 박는다. 날카로운 것들도 있어서 종이 등으로 둘러싸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별  없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쓰레기통에 와장창 넣어 버린다.



안 그래도 휑했던 집인데 더 휑해진다. 봄인데도 여전히 방 안에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진다. 애증의 노란 조명을 바라보자니 그 간의 시간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을 땐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 날짜를 셀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에 더 머물고 싶었고 더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식재료들도 남은 것이 별로 없어 저녁은 역시나 케밥으로 사 먹기로 한다. 이 케밥도, 케밥집 아주머니도 별안간 그리워질 것이다. 케밥을 사고 헤쀠블리크 광장으로 걸어간다. 이 갈리아의 물줄기, 아틀란티코 배 식당, 주변의 사람들, 내가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 식당...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꼭 다시 오고 싶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케밥을 먹으며 헤쀠블리크를 중심으로 해가 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 도시는 정말 야속할 정도로 아름답다. 아마 오 년, 십 년이 지나도 아름다울 것이다. 나는 세월을 차곡차곡 먹으며 늙어가겠지만 이 도시는 이미 늙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늙는 법을 모르는 것인지 세월이 지나도 똑같을 것만 같은 확신이 든다.


 

교환학생 기간 동안 내 기분을 지배했던 우울감, 쓸쓸함이 떠나는 날이라고 해서 더 깊어지지도, 얕아지지도 않는다. 다만 그간 내가 시도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가 조금은 짙어진다. 하지만 이 아쉬움도 내 자산으로 가져가기로 한다. 이 아쉬움을 디딤돌 삼아 꼭 언젠가 다시 도전하기로 다짐한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헤쀠블리크 광장의 야경을 바라보며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눈에 꼭꼭 담아간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느꼈던 것들을 절대 잊지 않기로 하며 아쉬움을 다시 꾹꾹 내 몸에 아로새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갈리아는 여전히 그림 같다. 나만 아는 야경인 것만 같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갈리아의 밤.  나의 우주를 넓혀준 갈리아의 밤하늘. 나의 우주는 그렇게 비로소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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