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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Oct 13. 2021

여전히 파리는 아름답고 삶과 죽음은 어렵다

[프랑스 교환학생기] 69. 다시 파리로


오늘은 정든 스트라스부르를 떠나 파리로 가는 날이다. 아침 여섯 시에 기상했다. 오늘이 바로 전기요금 폭탄을 맞은 날이다. 손 쓸 도리 하나 없이 이곳을 떠난다. 떼제베에 탑승한 지 두 시간 만에 파리에 도착해버렸다. 조금 자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도착해버린 기차가 야속했다. 파리 동역에서 내렸는데 내가 예약한 한인 민박까지 가는 길이 조금, 아니 많이 험난했다. 파리 지하철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나의 마지막 여행 계획은 파리-니스-파리 그리고 출국이었기에 스트라스부르에서의 모든 짐을 다 싸서 나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20인치와 30인치 캐리어에 짐이 다 담겼다.



캐리어 두 개에 가방까지 낑낑대며 오는 동양인 여자애를 파리지앵 두 명 정도가 도와줬다. 짐을 들어주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이 분들은 선량한 시민이셨다. 복 받으실 거예요 정말. 선량한 프랑스 시민 하니 스트라스부르 빨래방에서 만난 여자분도 기억난다. 나는 항상 집에서 걸어 5분 정도에 있는 빨래방에서 빨래를 해야 했는데, 처음 갔을 때 사용법을 몰라 어리바리하게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예쁘게 생기신 금발의 프랑스 여성분이  나를 도와주시는 게 아닌가. 그분은 영어를 못하시는지 나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쩔쩔매고 있는 나를 대신해 척척 빨래를 돌려주셨다. 나도 한국에서 낑낑대고 있는 외국인을 보면 반드시 도와주리라 다짐한다.

 


어찌 됐든, 나는 인터넷상에서 말이 많던 한인 민박을 예약했었다. 민박집주인 아줌마의 인성 논란이었다. 아줌마가 성깔이 깐깐하고 잔소리를 많이 한다나. 까탈스러운 인상은 있어 보였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괜찮다고 느꼈다. 민박은 시설도 괜찮고 와이파이도 잘 터졌다. 다만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민박집이었다.


 

여행자에게 정말 사랑스러운 어플 씨티맵투고와 씨티맵퍼로 몽마르뜨 언덕을 목적지로 찍고 길을 나섰다. 과연 파리는 파리다. 눈앞에 펼쳐진 파리 시내가 마치 거짓말처럼 아름답다. 감각이 숨 쉬는 빛나는 도시. 두 번째 오는 파리지만, 어느 한 구석 예쁘지 않은 데가 없어 보인다. 당장 눈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앉아 카페에 있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야만 할 것 같다.


 

이곳을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담았다.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잡아보고자 캐리커처 작가에게 미소를 맡기는 사람들, 속사정은 몰라도 겉보기엔 낭만적인 직업의 캐리커처 작가들. 상점을 지키는 다소 권태로워 보이는 직원들, 언덕 중턱에 담쟁이넝쿨이 드리워진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 작은 아트 갤러리 안에서 분주하게 서류를 들여다보는 사람들.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얼굴의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 파리가 별 거냐는 듯 계단 손잡이를 미끄럼틀 삼아 노는 아이들. 사연이 많아 보이는 집시 스타일의 청년.

 


몽마르뜨를 내려오는 길 또한 평화 그 자체였다. 프랑스의 카페 문화는 '야외'로 귀결된다. 프랑스인들은 야외 테이블을 정말 사랑하는 듯하다. 아예 길거리를 바라보는 쪽으로 의자를 놓고 도시를 즐긴다. 파리에 혼자 온 나는 이런 카페 문화를 많이 즐기지 못해 아쉽다. 그저 이들을 관찰할 뿐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몽마르뜨 묘지에 도착했다. 무덤마저 운치가 있다. 알록달록 피어있는 꽃들이 근엄한 무덤의 분위기를 밝히고 있었다. 에밀 졸라 무덤만 찾아봤다. 본 적도 없고 나와 관계도 없는 사람의 무덤을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에밀 졸라의 육체는 이미 자연의 일부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의 정신만이 텍스트로 남아 사람들의 영혼에 가닿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새삼 인간이 얼마나 생에 의지가 강한 동물인지 깨닫는다. 인간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또 후대에 남긴다. 한편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만, 아직은 먼일 같아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죽음을 이해해야 삶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하던데, 난 그 무엇도 이해하기엔 아직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감상으로 머리가 아파진 나는 이내 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햇빛에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세느강. 그리고 우뚝 솟은 철제 건축물. 세느강 한편에 정박된 배에서 흰색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추고 고급스러운 식사를 즐기는 젊은 여자와 남자들. 내가 걷는 파리의 곳곳이 젊음, 아름다움, 청춘을 외치는 듯했다.


 

야속하게도 현대미술관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닫혀있었다. 그래서 샤요궁으로 발길을 돌렸다. 샤요궁은 에펠탑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 중 하나다. 부활절 휴가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프랑스인들에겐 대체 얼마나 많은 휴가가 있는 것인가) 지난번 파리에선 추운 날씨에 벌벌 떨며 이곳에서 패션위크의 분위기를 느꼈던 것이 기억났다. 오늘은 날이 춥지 않아 훨씬 기분이 산뜻했다. 하지만 사람이 점차 많아진다. 인구 밀도가 높아지다 보면 그곳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줄어들고 피로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서둘러 민박으로 다시 향했다.

 


민박집 침대가 모두 꽉 찼다. 다들 좋은 분 같았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한식 식사가 맛있다. 내 입맛에 조금 짰지만 이 정도면 푸짐하고 맛있는 편이다. 침대에 누우니 전기요금 300유로가 또다시 생각난다.

 


파리는 아홉 시에 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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