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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Oct 14. 2021

당신은 어디를 향해 셔터를 누르실 건가요?

[프랑스 교환학생기] 70. 파리2


여행이 계속되다 보니 체력이 좋지 않았다. 오늘 아침도 매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을 먹은 후, 한 시가 다 돼서야 밖으로 나왔다. 바스티유 광장을 향해 터벅터벅. 가는 길 마트에서 본마망 잼이 샘플 크기로 된 것이 여러 개 들어있는 세트를 발견했다. 선물하기에 딱 좋은 구성이었다. 이제 슬슬 가족들과 친지, 친구들 줄 선물을 사모아야 하니까.

 


길을 헤매긴 했지만 파리 유명 편집 매장인 레끌레르(L'Eclaireur)를 찾았다.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아쉽긴 한데, 막상 구경해도 살 것도 아니어서 발길을 금방 돌렸다. 당시 한국인들의 프랑스 필수 쇼핑 코스인 벤시몽도 들렸다. 마음에 드는 제품은 사이즈가 없어서 사지 않았는데 안 사길 다행인 것 같다. 왜 이리 남들이 산다고 하면 나도 사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드는 걸까? 없어도 내 인생에 지장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Minimes이라는 레스토랑에 우연히 들어왔다. 식당의 외관이 나쁘지 않았고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다. 살면서 그 안에 속해있는 사람들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송로버섯 크림 파스타를 시켰다. 유럽에 오면서 송로버섯의 맛을 알았다. 파스타도 나쁘지 않았는데 가격이 나름 합리적이었다. 14유로에 파스타, 커피, 푸딩, 티라미수까지 나왔다. 식사의 완성은 아무래도 달달한 디저트다.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이었는데 3개월이 지났지만 다 읽지를 못했다. '나의 확인'이라는 파트에 유독 공감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레스토랑 앞에 우연히 발견한 액세서리 가게에서 반지를 샀다. 아주 작은 실반지 두 개였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파리의 매력은 이런 광고와 브랜딩에 범벅되지 않은 부티크에 있다. 액세서리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던 가게 주인의 우아한 자태가 그 가게의 분위기를 완성시키는 듯했다. 여행을 가면 소비가 더 헤퍼진다. 내가 사는 물건에 여행지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감성을 담아버린다. 그런데 대체로 그 물건들은 집으로 돌아오면 놀라우리만치 그 빛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그 물건을 산 것일까, 그 시간을 산 것일까.


 

칼하트를 찾아 찾아 매장에 들어갔다. 남동생 선물을 위해서다. 프랑스 브랜드도 아닌데 지금 생각하면 굳이 왜 칼하트였나 싶지만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를 찾다가 겨우 들어간 것이다. 카모플라쥬 무늬의 작은 트라우저가 가격이 합리적인 것 같아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팬티였다... 동생은 한동안 그 팬티를 입지도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언젠가부터 입기 시작했던 것 같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동생은 그 팬티를 아주 즐겨 입고 있다.


 

퐁피두 센터를 두 번째로 찾았다. 저번에 왔을 때는 추운 겨울 날씨 탓에 코를 찔찔대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봤는데, 이번엔 날씨도 마음도 훨씬 풍요로운 느낌이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전을 보기로 했기 때문. 나는 사진을 좋아해서 유명 사진작가들에도 관심이 꽤 있었다. 서양권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들은 대체로 보도사진작가그룹인 '매그넘 포토스' 소속인 경우가 많다. 나는 해당 그룹 소속의 작가들에 한창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그중 대장은 역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었다. 그래서 파리 전역에 해당 전시를 광고할 때 꼭 전시를 보겠다 다짐했고 기회가 된 것이다.

 


퐁피두 센터 뮤지엄은 학생증으로 무료입장이 가능했지만 사진전은 유료였다. 흔쾌히 티켓을 구매하고 사진전으로 올라갔다. 전시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구성이 알찼다. 시기 순으로 정리된 전시는 이해하기 쉽게 오브제 별로도 잘 구성해놓아서 사진을 이해하기에도 수월했다. 게다가 사진뿐 아니라 브레송의 스케치, 회화, 영화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브레송이 슬레이트를 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가 사진 외골수가 아니었다니.! 그는 영화가 사진보다 많은 관객을 이끌 수 있어서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브레송은 최초로 정치인이 오는 행사에서 정치인이 아니 국민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브레송이 조명한 사진 속 국민들의 표정은 '살아있음' 그 자체였다. 사진의 매력은 역시 '멈춰있기' 때문이다. 찰나를 박제시키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극대화되고 앞뒤 맥락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대학 1, 2학년 때의 시절이 떠오른다. 전공에 흥미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해당 학문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고, 관련 경험도 없었다. 책이든 전시든 영화든 길거리든 뭐든 기초적 소양이 내 안에 쌓여야 학문적, 이론적 지식을 배울 때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럽을 다니면서 쌓인 것들이 내 안을 든든히 채우는 것 같다. 이제 돌아가면 좀 더 잘할 수 있겠지. 가서도 책을 많이 읽고 전시도 많이 다니겠다고 다짐한다. 휴, 그나저나 파리의 찌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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