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71. 파리3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왔다. 작고 낡은 곳이긴 했는데 문학가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낮은 천장과 조도의 그 공간에는 쿰쿰하면서도 퀴퀴한 책 냄새가 가득했다. 사실 이 서점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진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정신을 이어받아 개업한 오마쥬 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미국인 실비아 비치가 차린 곳으로, 예술가들이 많이 살 던 센 강 좌안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는 헤밍웨이에게 흔쾌히 외상을 주기도 하고 신진 작가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다락방도 제공했다고 한다. 책들 사이에 놓인 허름한 침대에서 작가들이 숙식하며 글을 썼다니.
나는 니스에서 읽을 겸 이곳을 방문한 것도 기념할 겸 어느 책을 살까 고민하다가 오스카 와일드의 'The decay of lying and other essays'를 샀다. 좀 어려워 보이긴 했는데 정치, 역사, 예술, 사회 등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것 같아 구입했다. 완독 하길 기원한다.(결과적으로 수년이 지금도 한 장을 넘기지 못했다.)
중간에 다리가 아파 세느강 주변의 아무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설탕 한 개를 털어 넣은 것을 후회하며 한량 같은 시간을 보냈다. 황금빛 바로크식 인테리어를 감상하며 책도 읽고 셀카도 좀 찍어본다. 몇 시간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길거리 구경까지 알차게 해 준다. 한잔에 2.4유로나 하는 한입거리 에스프레소를 마셨다면 이 정도는 누리고 와야 한다.
오르세 미술관에 왔다. 저번보다 훨씬 어머어마한 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난 저 줄을 기다릴 자신이 없다. 렌즈를 낀 눈이 또다시 아파온다. 컨디션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제 미술관도 조금 질린다. 내 뇌의 예술 섹션은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른 것 같기도 하다. 의무감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오히려 독일 거라 위안 삼으며 발길을 돌렸다
파리의 또 다른 유명 편집샵 콜레트에 또 들렸다. 이곳에서 본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의 블랑쉬라는 이름이 자꾸만 끌려 구입할까 했지만 비싼 가격과 너무 인위적인 향 때문에 다시 향수를 내려놓는다. 갑자기 비가 미친 듯이 내린다. 민박집으로 가는 지하철 표를 끊었는데 내가 끊은 까르네가 어린이용이었다. 지하철 경찰에 잡혀 벌금을 33유로 물었다. 파리의 지하철 경찰은 아주 무서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 우울함이 몰려왔다. 나쁜 일이 계속해서 생기는 것만 같았다.
오늘 아침에 같이 바에 가기로 했던 민박집의 언니가 사라졌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니 민박집에 새로 온 어떤 남자분과 나갔다고 한다. 이 언니 남자 친구도 있는 것 같던데... 밤새 남자와 통화하는 듯했다. 그런데 또 자기는 'Lover'가 없단다. 이게 바로 양식업자의 면모인가? 어쨌든 나는 허무하게 밤 약속을 바람맞아버렸다. 차라리 잘 되었다. 민박집에 사람들이 하나 둘 귀가하더니, 술판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사 온 와인과 친구가 내게 보내준 휴대용 소주를 꺼내 다 함께 마셨다. 그럭저럭 훈훈하게 마무리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