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 여행기 DAY2
디스커버 호텔에서 택시를 잡는 건 쉬웠다. 호텔을 나가자마자 1분 만에 택시를 1000페소에 잡았다. 차는 그래도 멀쩡한 편의 승용차였고 다행히 에어컨은 틀어줬다.(예전에 베트남인가 태국에서 에어컨 안 틀어주던 기억이 있다.) 뽕짝스럽게 믹스된 팝송을 들으며 여정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기사가 차선을 마구잡이로 넘나드는 것이었다. 그냥 틈만 나면 앞으로 추월을 하고, 커브 구간에서도 반대편 차가 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거 뭐 차선 넘지 말고 안전하게 가달라고 해야 하는 건지... 타지에서 이렇게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에 휩싸이며 1시간 반을 달려야 했다.
카티클란 포트에 도착해서도 꽤나 당황스럽고 혼잡스럽다. 우리가 거친 절차는 표 사기, 우리의 인적 사항 제출하기, 탑승하기 순서. 표는 일반 배와 페리로 나뉘는데, 페리는 시간이 1시간 간격이고 굳이 탈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마저도 호객을 해 어리바리하게 있다가 페리 표를 살 뻔했다. 또 인터넷 서칭 중 배 타고 내릴 때 짐을 옮겨 주는 포터한테 팁을 줘야 한다는 글을 봤는데, 그냥 본인이 들어도 될 법하다. 괜히 팁 때문에 쓸데없이 스트레스만 받았다.
배를 내려서 보라카이섬에 도착하면 그제야 내가 보라카이에 왔구나 실감이 난다. 정수리가 타버릴 듯한 태양과 말 그대로 에메랄드 빛의 바다. 하지만 호객의 시작이다. 캐리어를 들고 있는 우리 보고 오토바이를 타라고 호객하는 건 대체 뭔지. 캐리어를 머리에 이고 타라는 건가? 우리는 호객을 거절하고 트라이시클 타는 줄에 섰다. 한 아줌마가 어디까지 가냐고 묻더니 어떤 트라이시클을 타라고 지시한다. 보라카이에 있는 내내 느꼈지만 이 나라는 호객이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분업화된 나라다.
드디어 도착한 디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놀랐다. 할로 망고를 사 먹었는데 달고 인공적인 맛이었다. 우리의 숙소인 "더 타이즈 호텔"은 외관은 깔끔했다. 참고로 나는 숙소에 창이 없으면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예약할 때 사진에 창문이 있어 선택했는데, 문을 여니 벽뷰다. 역시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은 200%는 예쁘게 나오도록 과장된 사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짐을 대충 풀고 화이트 비치로 나가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에메랄드 빛 바다+무성한 야자수의 삼박자가 사람들이 왜 이리 보라카이에 환장하는지 설명해준다. 하지만 모래사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호객이 치고 들어온다. 아, 피곤함의 시작이다. 액티비티, 식당, 마사지 등 그냥 걸음걸음마다 호객꾼들이 말을 건다고 보면 된다.
오늘은 보라카이를 여유 있게 맛보는 날로 정했기에, 허기를 달랜 다음 마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리의 첫 식당은 Gerry's grill이었는데 긴 대기줄에 비해 그냥 그랬다. 시그니쳐 메뉴인 오징어 구이가 너무 식어 있었다. 마사지는 Shorebreak라는 곳에서 받았는데 가격이나 서비스면에서 만족스러웠다. 내 친구에게 계속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으라고 하는 직원이 있어서 좀 웃겼다. "Waxing, Sexy"를 연신 읊조리던 그 직원분. 어디에나 특이한 분은 있나 보다. 다른 직원 분이 한국어로 쟤는 “도라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녁 식사는 한인 사장이 운영한다는 레드 크랩으로 향했다. 새우와 게, 갈릭 라이스 세 가지 메뉴를 시켰고 가격은 둘이서 7만 원 정도 나온 것 같다. 버터 갈릭 새우는 양념이 좀 심심했고, 칠리 크랩은 달달했다. 개인적으로 동남아 음식을 먹을 때의 쌀은 동남아의 흩날리는 쌀을 좋아하는데, 여기는 한국인 관광객 위주라 그런지 한국식 쌀이어서 아쉬웠다. 나는 사실 서비스로 준 코코넛 스무디 같은 게 더 맛있었다. 코코넛의 향이 달달하게 올라오면서도 너무 달지도 않고, 코코넛 가루가 씹히는 게 보라카이에서 먹은 스무디 중 최고였다. 으, 지금도 먹고 싶다. 식사 중간에는 정전이 되는 사태도 벌어져 필리핀의 전력난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