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 여행기 DAY3-1
오늘은 호핑투어 날이다. 눈을 뜨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호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또 끄물끄물한 날씨에 야외 활동을 하기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클룩으로 현지 호핑투어를 예약했는데, 취소됐는지 어찌 되는지 알 영문이 없으니 우선 약속 장소로 나가보기로 했다.
날씨와는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호핑투어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꽤나 많아서 두 개의 배로 나눠졌다. 우리는 정신없이 나온 탓에 챙겨 와야 할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필수 준비물은 비치타월, 선크림인데 이 두 가지를 놓고 와서 곤혹스러웠다. 비가 오던 터라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추웠는데, 이때 비치타월로 몸을 감싸줘야 한다. 선크림은 보라카이에선 항상 필수다. 가방에 있던 샘플용 선크림으로 겨우 화상 환자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우리의 가이드는 명랑한 필리핀 여성분이었다. 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고, 얇은 바람막이를 걸치고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가이드의 내공이 느껴지는 옷차림이었다. 우리가 탄 배는 카티클란 항구에서 탔던 나무배와 비슷했다. 천장이 매우 낮고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 나무배. 덕분에 나는 스노클링 포인트로 가는 동안 폐쇄공포증에 시달렸다. 천장 낮은 작은 배에 밀도 높게 사람들이 우글우글 앉아서 가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게다가 나는 망망대해에 있을 때에도 폐쇄 공포증을 느꼈다. 따지고 보면 폐쇄 공포증이 아닌 것이다. 나의 공간에 대한 공포증은 "내가 원하는 때에, 그 공간을 쉽게 나갈 수 없을 때" 도지는 것이었다. 섬에서부터 멀어져 너른 바다로 나갈수록 무서워졌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했다. '나는 자유롭다'를 속으로 되뇌며 풍경을 즐기려고 애썼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크로커다일 섬"이라는 스노클링 포인트에 도착했다.
드디어 파란 보라카이 바닷속으로 뛰어들 시간이다. 한국에서 스노클링 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봤을 때, 시원~하게 다이빙해서 바닷속에 들어가는 게 첫 번째였는데. 현실은 쫄보. 사다리를 잡고 아주 조심조심 내려갔다. 아직 구름이 걷히지 않아 파도가 다소 있는 편이었다. 정박해 있음에도 배는 일렁거렸고, 바다 속도 마찬가지였다.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둘째고, 바닷속에서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칫 하면 바다가 날 삼킬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그래도 파도의 리듬에 몸을 적응시키려고 노력했다. 스노클링 장비 적응을 위해 호흡을 후-후- 해본 다음, 물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바다 세상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새로운 세계였다. 산호와 바다의 지형지물 사이로 각종 물고기들이 제 세상을 누비고 있다. 노란띠와 파란띠를 두른 물고기들, 새까만 물고기, 새하얀 물고기들이 떼로 지어 다니는데, 이렇게 가까이 함께 한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로웠다. 사실, 그것이 원래의 모습인데. 인간이 만든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관찰자와 대상으로 구분된 상태가 어색하고 이상한 것인데 말이다.
바다는 깊고 넓었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불과 몇 미터가 되지 않았다. 왜 그리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드는지 알 것 같았다. 더 멀리 가보고 싶었고, 더 깊게 가보고 싶었다. 더 먼 곳, 더 깊은 곳에는 무언가가 더 있을 것만 같았다.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을 배워야겠다. 죽기 전에, 더 많은 세계를 봐야만 하겠다.
구명조끼와 스노클링 장비를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프리다이빙으로 물고기와 노니는 필리핀 현지인이 부러웠다. 물고기와 노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대신 다이빙에만 도전했다. 다이빙은 정직하다. 내가 빨려 내려간 만큼 다시 나를 올려준다. 깊게 빨려 내려가는 순간은 왠지 모르게 나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바다는 이내 나를 해가 떠있는 수면 위로 올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