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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Nov 10. 2019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를 통해 이해해보는 '나는 좋은 사람일까?'에 대한 답

최근 '내가 과연 좋은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되뇐다.(정확히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질까?'가 이글의 포인트이다.) 직장인이 된 후로 내 인간관계는 이전과 달리 더 좁아졌고, 앞으로의 인간관계에 있어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맞을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잡지를 읽다가 웹툰으로 유명해진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구가 사르트르가 한 말임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사르트르의 인간관계론에 대해 조사해보게 되었고 정리가 필요해 보여 이 글을 적는다.


우선 사르트르가 한 말 "타인은 지옥이다"의 출처를 보자.


 희곡 ‘출구 없는 방’(1944)의 대사를 통해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고 처음 말한 사르트르는 이 말이 “늘 오해되어 왔다”라고 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해가 되고 지옥처럼 된다는 뜻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한 건 좀 다르다”라고 했다.  이 연극에 대한 1965년 강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중략)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타인들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공공장소에서 날 짜증 나게 하거나, 나를 갈구는 직장 상사처럼 날 열 받게 하는 사람들을 '지옥'이라고 일컬은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얽매이는 우리 자신이 지옥에 살고 있는 것"이라 표현한 것이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타인이란, 나를 대상화시킴으로써 나의 주체성을 훼손시킨다. 즉, 우리는 무언가를 인식할 때 항상 대상화를 시키고, 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열쇠 구멍을 통해서 옷 벗는 여인을 훔쳐보는 남자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 훔쳐보는 남자는 자신에 대하여 주체가 되며, 나체의 여인은 저절로 대상이 된다. 그러나 만약 지나가던 사람이 훔쳐보는 사람보고 호색한이라고 조롱한다면, 훔쳐보는 사람 또한 그 자신이 대상이 된다. 


반면 동시에, 우리는 타인에 의해 나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는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나에게 "너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야"라고 말했다면, 나는 선생님이 말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렇게 되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 요구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서의 모습과 나 자신이 놓인 그대로의 모습이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나의 존재, 즉 실존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타인은 나에게 투쟁의 대상임과 동시에 나에게 존재 가치를 부여해줌으로써 나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자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역설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사르트르는 인간관계에 대한 4가지 태도를 설명한다. 짧게 설명하자면 첫째는 '마조히즘'으로 남의 권력과 명령에 굴복하며 그에 맞춰 사는 노예가 되는 것, 둘째 '사디즘'은 타인을 노예로 부리며 주인처럼 군림하는 것, 셋째 '무관심'은 타인과의 어떠한 친밀한 관계도 부정하는 것, 넷째는 '유희'로 타자가 나를 보는 대로 연기하는 태도이다. 사르트르는 '유희'가 가장 대중적인 태도라 보았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ㅇㅇ는 정말 착한 사람 같아", "ㅁㅁ는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이었어"와 같은 식의 말을 자주 했다. 자연스레 질문이 피어올랐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의 기준이 무엇일까?' 절대적인 기준이 없음은 분명하다. 또한 사르트르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절대 불가능하기에, 내 지인이 인지하는 '착함'에 대한 개념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지인 본인 조차 자신이 내리는 그 개념의 정의는 불분명하거나 아주 유약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가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이든 간에, 영원히 절대적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하며 내가 완벽히 이해할 수도 없는 그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종종 우리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더 높은 연봉을 주는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수재라고 생각한다. 상사들은 내가 더 서글서글하고 적극적인 청년 사원이 되길 바란다. 주변 지인들은 내가 이해심 많고 속 깊은 사람이라 여긴다. 하지만 왠지 그들의 기대가 내게 안 맞는 옷처럼 갑갑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론 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일은 너무나 중독적이다.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일과 타인의 사랑을 섭취하는 것은 충돌되는 일일까? 앞으로 더 고민해볼 일이다.




인용 : [분수대] ‘타인은 지옥이다’의 의미, https://news.joins.com/article/23263605

참고 : 사르트르의 인간관계론,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zech_love&logNo=220413601775&parentCategoryNo=&categoryNo=156&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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