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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Oct 13. 2019

나에게 한글이란

ㅇㅏㄹㅕㄴㅎㅏㄱ ㅗ ㅅ ㅏㄹ ㅏㅇㅅ ㅡㄹ ㅓㅂㄷㅏ

10월 9일 한글날은 지났지만, 한글 그리고 국어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 적어보고자 한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와 국어를 곧잘 했다. 덕분에 선생님, 부모님들께 칭찬도 받았다. 그래서 국어란 나를 자랑스럽게 하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인터넷 소설이라는 게 한창 유행했을 때는, 몇 백 원짜리 노트에 손으로 꾹꾹 눌러 담아 창작해 본 '인터넷 소설'을 친구들에게 슬며시 보여주기도 했다. 친구들이 다음 편이 기대된다 하여 꽤나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때 만난 문제집 속의 국어 지문들은, 팍팍한 수험생활 속에서 나를 좁은 책상이 아닌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었다. 조선시대로 가기도 했고, 전쟁 통으로 가기도 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갔다. 좋아했던 남자아이들을 떠올리기도 했으며, 시골 할머니를 떠올리기도 했다. 봄이면 그 봄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만들었고, 겨울이면 그 겨울이 더욱더 고독하게 만들었다.


대학에 와서 나는 전공자가 되었다. 국어국문학. 내가 전공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전공하게 된 것이 이상하지도 않았다. 대학에 와서는 한글을 아주 잘디 잘게 쪼개 보았다. 잘디 잘게 쪼개 본 한글은 매우 논리적이고, 예외가 적은 언어였다. 쪼개 볼수록 머리는 뜯어질 거 같으면서도, 수학처럼 문법이 완벽하게 분석될 때의 쾌감은 잊을 수 없다. [은, 는, 이, 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물었던 중학교 국어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대학에 와서야 속 시원히 이해했다. [은, 는]은 [이, 가]에 더하여 다른 의미가 더 첨가되는 "보조사"였다.


대학 때는 한글 활자에 파묻혀 산 시기이기도 하다. 다름 아닌 학생 기자를 하면서 수백수천 매의 원고를 작성하고 교정했다. 학생 기자들은 우스갯소리로 '활자 중독'이라며 자조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한글로 문장을 만들고, 또 끊임없이 다듬는 일은 마치 내가 조각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한글은 내게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전달한 수단이 편지였기 때문이다. 감정 표현이 즉각적이지 못한 성격이기에, 차분히 정리했던 감정과 생각들을 편지로 써서 전하는 것을 즐겼다. 기념일이나, 생일,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퍽 기뻤다.


사무실 달력이나 각종 메모에 적힌 직원들의 육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한글은 참 성격과 기분을 잘 드러내는 언어라고. 필기체가 없고, 글자의 획수나 모양이 꽤나 다양하기에 만들 수 있는 모양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상태는 주로 '급함'과 '피곤함'이다.


이렇게 쭉 써 내려가 보니, 한글이란 내게 아련하고도 사랑스러운 존재인 것 같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적는 것조차 아련하게 느껴진다...! 그냥 이렇게 가끔 한글에 대해 국어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 모양새를 뜯어보면 꽤나 아련하고 사랑스럽다. ㄱ..ㄴ..ㄷ..ㄹ..ㅁ..ㅂ..ㅅ..ㅇ..


어린 정조가 할아버지께 올린 편지. 요즘 아이들도 편지를 많이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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